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content and characteristics of Donghak’s spirit of bogukanmin(輔國安民) had been changed in the development of the era. Early Bo- gukanmin which meant “making the absence of a national crisis in the existing political and social order”experienced a qualitative change of the‘Anmin’concept in the era of Choesihyeong’s period of activity. And its premise was the fundamental change of the existing unequal political and social order. The Bogukanmin as a goal of the revolutionary movement was further strongly and straightforwardly emphasized in the era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and the more practical actions and refined methodology was made to realize it. Although the revolutionary movement finished as an unfinished film, as a religious political ideology and a social reform movement, Donghak’s power of popular mobilization was the driving force to develop 3‧1 movement and Chondoist enlightenment movement which could break into the Japanese colonial rule and the loss of sovereignty. However, Donghak’s spi rit of bogukanmin has not been positively projected into Korea’s modern political history. Severe ideological conflict and Korea War immediately after the achieved independence, various socio-political problems derived from the rapid industrialization and modernization and the still existing undemocratic elements has buried the value of Donghak’s spirit of bogukanmin. Nevertheless, it can be said that the universal and core values of Donghak’s spirit of bogukanmin such as individuals-oriented thinking, relativist viewpoint, coordination and cooperation in the affluent community building, and community members’ active practice and participation can be evaluated as a great value for Korea’s future democracy.
한국어
동학 ‘보국안민’ 정신의 내용과 성격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발전되어 갔다. 창도 초기 “기존의 정치사회질서 내에서 국가적 위기가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을 의미했던 보국안민은 최시형 활동기에 이르러 ‘안민’ 개념의 질적 변화를 경험했고, 그 전제는 기존의 차별적 정치사회질서관의 변화였다. 동학농민혁명기에는 혁명운동의 목표로서 보국안민이 보다 강하고 직설적으로 강조되었으며,‘안민’의 질적 변화를 보다 구체화 할 수 있는 실천적 행위로서의 대규모 혁명운동과 방법론의 제시가 이루어졌다. 비록 혁명운동은 미완으로 막을 내렸으나 종교정치사상으로서 그리고 사회변혁운동으로서 동학이 지닌 대중동원의 능력과 불합리한 현실타파의 지향성은 국권상실과 일제 식민지로의 전락이라는 민족 최대의 위기상황에서 3‧1운동과 천도교 대중계몽운동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동학의 보국안민의 정신은 이후 한국 현대정치사에 긍정적으로 투영되지 못했다. 광복을 이룬 직후의 이념적 갈등과 한국전쟁, 남북분단, 급속한 산업화와 근대화가 파생시킨 다양한 문제들,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각종 비민주적 요소들이 동학 보국안민정신의 가치를 묻히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의 보국안민의 정신이 지속적으로 표방한 개체 중심적 사고와 상대주의적 관점의 중요성, 조화와 협력의 풍요로운 공동체 건설의 목표, 그리고 사회구성원의 실천적 참여의식 제고의 필요성 등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발전을 위한 토대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동학사상에 나타난 보국안민의 정신
3. 동학농민혁명기의 보국안민 정신
4. 3․1운동과 천도교 대중계몽운동기의 보국안민의 정신
5.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