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Chiyeo(聚語)’ is the only material for the assembly of the Donghak(東學) at the Jangnaeri(帳內里) in the 1893 which was one of the largest scale assemblies of the Donghak(東學). The editor of Chiyeo, undiscovered, gathered 14 historical records that shows to us about the political situation during 1893-1896 including the Jangnaeri(帳內里) in the 1893. The witness’s reports were too precise to be of real value especially in the descriptions of the followings: the activities of Donghakdo(東學徒), the construction process and method of the fortress, the lists of Dajeobjoo(大接主)and the speech which was delivered by Eo yunjung(魚允中), a top rank government official. The limitation of ‘Chiyeo’ is that did not revealed the whole story of the assem-blies conference process within the religious body of Donghak in the Jangnaeri(帳內里).
한국어
1893년 보은 장내리의 동학집회를 전해주는 사료가 취어이다. 그러나 취어는 장내리집회뿐 아니라 1893년에 작성된 7편의 자료와 1편의 1894년 기록, 그리고 5편의 1896년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편집자는 익명이지만 격동기의 주요 사료를 선별해서 수록해 놓은 것이다. 취어에 실린 자료들은 혼란한 시국에 대한 우려를 보여주는 상소문과 보고서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자료 중에서 보은 장내리 관련 내용은 전체의 30% 분량으로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다른 자료에서 볼 수 없는 유일본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장내리집회와 관련한 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귀중한 9개의 원문사료가 전재되어 있다. 3월 11일 「報恩官衙 通告」, 3월 16일의 「東學人令」, 3월 23일 「東學人榜」, 3월 23일 「兩湖都御史 魚允中 曉諭文」, 3월 26일의 「飭諭文」 「狀啓草」 「二月伏閤時 使司謁口傳」 「綸音」 「宣撫使再次狀啓 魚允中兼帶」. 장내리 집회장소에서 매일 일어난 사건들은, 목격자가 직접 본 사실을 보고한 문서이기 때문에,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동학도들의 집결 모습과 돌성 축조, 대접주 명단과 선유사 겸 선무사 어윤중의 활동 등이 매우 자세하다. 그러나 이 자료는 관찰보고서이기 때문에 집회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여러 한계가 있다. 동학의 지도부에서 내린 주요 결정과정과 배경에 관해서는 소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윤중도 척족민씨를 축출하라는 동학도들의 주장을 장계에 밝혀놓지 못하였다. 척족 민씨들의 학정과 수탈은 1893년 동학도들이 집단행동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취어』는 사료가치가 높지만 동시에 사료비판이 필요한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목차
1. 머리말
2. 『취어』의 사료분석
1) 『취어』에 수록된 자료 검토
2) 『취어』의 전재 자료 기록
3. 『취어』와 보은집회의 주요 내용 분석
4.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