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murals came out after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for celebrating the new political system of China.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murals decorating government offices as the symbol of expression of the rating system, ‘Pan-Jon Bi(判尊卑)’.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murals reflect age features and the public arts in the 1850’s as well. 1. The history of the murals of China The murals were prevalent in China since Joo-dynasty in AD 7 until Song-dynasty. After Won-dynasty, murals were painted mainly in the building where the low-socioeconomic class visits. The leaders of the taiping movement were the people of the lower classes and they were familiar with it. In this regard, they valued the mural arts as decorating the office buildings. 2. The start of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murals On April, 1852,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murals begin with occupying Young-an in Kwang-seo. In March, 1853, Taiping Heavenly Kingdom made Cheon-kyoung as the capital. The mural arts used as the means of the decorating the official buildings from then. The Taiping established ‘Su-kum-a(綉錦衙)’, the department of the national mural arts, made ‘Jeon-su-kum(典綉錦)’, the chief officer of it. During the Taiping-dynasty, the murals were the vogue for the government leading art. 3. The discovering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murals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turned out of a fail, Chung-dynasty destroyed the murals indiscriminately with other documents related with the Taiping Heavenly Kingdoms. For this reason, public didn’t know about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murals for a long time. On January, 1952, Eighteen murals revealed at Nam-kyoung and came out into the open. 4. The theme of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murals First, it covered landscape, flowers and birds. This subject is the main theme of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murals. It is the transmission of the traditional murals and reflects the public arts of China. Second theme is the animals especially beast of prey. By tradition, the brutes symbols of physical strength and intrepidity in China. After uprising, the Taiping Heavenly Kingdom were being in the battles and they reflected their situation on the murals. Third subject is the description of the life of labor. This appeared in the latter part of the Taiping. It was the hope of the realization of the ideal society which pursued by the Taipings. Fourth theme is the reproduction of the victory of the combats. It is a boost the morale of the troops. Last theme is the folklore and the history of China. This reflects the diversity of creativity of the murals in the late Taiping-dynasty.
한국어
태평천국벽화는 태평천국 봉기 이후 정치제도가 설립되면서 출현한 일종의 예술형식이다. 이러한 예술형식은 태평천국이 ‘判尊卑’의 등급제를 사용한 상징물이며, 또한 수많은 官府의 화려하고 장엄한 장식물로 되었기 때문에 선명한 시대특징과 대중적 예술경향을 담고 있다. 중국 벽화예술은 그 역사가 유구하다. 기원전 7세기 주왕조 시대에 기록이 보인다. 진·한 이후 벽화는 더욱 발전하며, 그 내용은 諸王, 孔子先賢 및 역대 공신 등을 다루고 있다. 남북조 수당시대에 이르러 중국 벽화는 전성기였다. 唐代부터 출현한 산수화 및 화조화는 벽화 내용을 더욱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宋代 이후 여러 원인으로 쇠퇴해간 벽화는 원·명·청 이후 더욱 쇠퇴해서 궁전 園池의 대들보 등의 채색을 제외하고 寺廟, 道觀, 祠堂, 社壇 會館 등 하층 백성들이 다니는 공공장소의 건축에만 존재했다. 태평천국은 광서성 산간지역에서 일어나 그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사회 하층민으로서 벽화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때문에 태평천국 정권이 수립된 후, 벽화예술 역시 중시되어 府, 第, 衙, 館을 장식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태평천국의 벽화는 1851년 9월부터 시작하여 1852년 4월 광서성 永安을 점거한 기간에 이미 출현했다. 1853년 3월, 태평군은 남경을 점거하고 天京으로 이름을 바꾼 후 수도로 삼았다. 이때부터 벽화는 天京城 내 각 王府와 官衙의 장식물의 중요한 수단으로 “창문부터 담장까지 벽화가 아닌 것이 없었다.” 태평천국은 전문적으로 벽화 업무를 전담하는 기관 ‘綉錦衙’를 설립하여 ‘典綉錦’으로 하여금 그 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典綉錦’에서는 각 지역에서 널리 畵工을 모집하여 天京에에서 벽화를 그리도록 했다. 태평천국 후기 벽화예술은 天京 뿐만 아니라 태평천국의 세력이 미치는 곳, 즉 皖, 蘇, 浙 등 여러 省으로 확산되었다. 태평천국의 10여 년 동안 정부 주도하에 벽화가 성행하여 위에서부터 하층사회까지 영향을 주었고 이후 강남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태평천국은 벽화예술 작품을 많이 남겼으나 태평천국이 실패한 이후, 벽화예술 작품 역시 다른 문헌자료 및 문물처럼 청정부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어 대부분의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때문에 당시 일부 기록을 통해 태평천국의 벽화에 대해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1952년 1월, 남경시 堂子街 태평천국의 한 王府의 18벽 벽화가 발견되어 비로소 태평천국 벽화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省에서 태평천국 벽화가 발견되었다. 문헌기록과 현재 전해오는 벽화를 통해 볼 때 태평천국 시기 벽화의 주제는 5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山水花鳥와 상서로운 物을 상징하는 내용을 다룬 것이다. 이 주제는 태평천국 벽화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그 특징은 중국전통의 벽화예술의 풍격을 계승하면서 또한 민간회화의 喜慶을 반영하고 있다. <그림1> 雲帶環山圖, <그림2> 江天亭立圖, <그림3> 鸳鸯荷花圖, <그림4> 鹿鹤同春图 등이다. 그 가운데 특히 그림3은 태평천국 벽화 중에서도 귀중한 자료에 속한다. 둘째, 각종 동물과 맹수류를 주제로 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禽獸類는 전투성과 용맹을 상징했다. 태평천국은 봉기 이후 항상 치열한 전투상황에 있었다. 이러한 주제는 대부분 태평천국의 각 府, 第, 衙, 官의 문과 벽에 그려서 농민정권의 권위와 존엄성을 상징했다. 이런 벽화들은 太平軍의 용맹성과 전투정신을 반영한다. <그림5> 金龍屏門圖附摹本, <그림6> 龍鯉躍龍門屏門圖, <그림7> 山涧虎豹圖 등이다셋째, 노동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이 주제는 태평천국 후기에 속한다. 그 수량은 많지 않지만 현실적인 작품에 속한다. 태평천국의 관할 구역에 속한 민중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며 즐겁게 일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써 “有田同耕, 有飯同食, 有衣同穿, 有錢同使, 無處不均勻 無人不飽暖” 이상사회의 실현을 희망하고 있다. <그림8> 樵夫挑刺圖, <그림9> 冬季捕魚圖附局部 등이다. 넷째, 군사투쟁의 승리를 재현한 것이다. 이 주제 역시 태평천국 후기에 해당하며 수량 역시 매우 적다. 남경시 堂子街의 江防望楼圖, 金華侍王府의 <그림10> 軍營望楼圖, 남경시 黄泥崗의 太平軍作戰圖, 안휘성 績溪의 <그림11> 太平軍攻城圖 등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벽화는 당시 군사투쟁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반영한다. 전투 분위기가 강하고 민중에 대한 교육홍보 효과와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유익한 주제이다. 다섯째, 민간전설과 歷史故事를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주제의 벽화는 주로 태평천국 후기의 절강성 金華, 嘉興 일대에서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八仙故事圖를 형상화한 것이나 三國시대 영웅의 고사를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내용은 태평천국 벽화 주제가 어느 정도 종교적 속박을 벗어나서 전통으로 회귀하였으며, 또 현지의 문화와 융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생활의 소박한 멋과 예술적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이 주제는 태평천국 후기에 이르러 벽화 창작의 다양성을 반영한다. <그림12> 八仙赴會圖附二局部, <그림13> 西游記故事圖, <그림14> 三顧草廬圖 등이다. 태평천국 벽화의 주요 특징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광범위한 통속성을 갖추고 있고 군중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인물을 그리지 않은 것이 태평천국 벽화의 특징이다. 태평천국은 종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반대하여 “인물을 그리는 것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태평천국 벽화 대부분은 인물을 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당연히 인물이 등장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생략되어 있다. 셋째, 농후한 봉건 等級制 경향을 담고 있다. 태평천국 벽화는 태평천국 정치제도의 건립과 함께 나타났기 때문에 그 시대의 고유한 관념과 경향을 벗어날 수 없다. 넷째, 전문 화가와 민간 화공이 공통으로 협력하여 벽화예술을 창작한 점이다. 태평천국은 ‘綉錦衙’를 두어 회화업무를 전담하도록 했으며, 또 회화를 이해하는 관원을 파견하여 ‘典綉錦’의 직책을 맡도록 하여 전문 화가와 민간의 화공을 모집하여 대규모의 벽화를 완성하도록 했다. 태평천국 벽화는 19세기 중엽 농민혁명시대에 남긴 예술 작품으로써 중국회화사에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또 전통의 중국벽화 및 회화의 예술 풍격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치열한 특징을 담고 있다.
목차
一. 壁画的渊源
二. 壁画的产生
三. 壁画的发现
四. 壁画的题材
五. 壁画的特点
六. 现存太平天国遗址壁画选介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