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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의 시작, 고부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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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bu Uprising, the Beginning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박대길

동학학회 동학학보 제25호 2012.08 pp.7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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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Donghak Peasant Revolution started with the Gobu Uprising on January, 1894 passing by Remission Movement of Choi Jewoo in 1892-93 and the revolt plan through the Round Robin on November, 1893. Such a historical facts were the thing that was well-known to many people now as well as at that time through government -authorized textbooks. But some scholars insist that the Beginning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was Mujang Uprising. They have not only prescribed that Gobu Uprising was ‘an insurrection of the people’ or a failed ‘uprising’ but also limited that it was previous step in Donghak Peasant Revolution. This phenomena can gloss over and distort the historical facts. Because this was based on the critique and citation on historical materials, and the denial and discontinuation about a causal relationship of historical facts to stand out only specific facts. Gobu Uprising, was the event that farmers occupied Gobu office against tyranny and plundering of Jo Byeonggap according to concrete plans such as the revolt plan through the Round Robin. This opportunity began to spark the revolution on a nation-wide scale. Namely, it was historical event with the justification and the symbolic meaning for gathering the important leaders and the crowd in Revolution. With that as a start, Mujang Uprising and Baeksan Meeting were held, and this was the gradual concentration and course necessary to the national spread of the Revolution. Therefore the initial process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started with Gobu Uprising based on the revolt plan through the Round Robin, was progressed for gathering the crowd in Baeksan, lined up Donghak Farmer Forces, and was expanded into Baeksan Meeting which the justifiability and character of the Revolution was clarified in. Also, Mujang Uprising can see continuous case and a key point between Gobu Uprising and Baeksan Meeting. Thus the initial process must be understood in one continuous event of the Revolution, so we can confirm true meaning of the Revolution comprehended as anti-feudal resistance movement and anti-foreign movement.

한국어

동학농민혁명은 1892-1893년 교조신원운동과 1893년 11월 사발통문 거사계획을 거쳐 1894년 1월 고부봉기를 시작으로 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그 당시는 물론 현행 검인정교과서 등에 실려 있으며, 다수의 국민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은 무장봉기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은 고부봉기를 ‘민란’ 또는 실패한 ‘봉기’로 규정할 뿐 아니라 동학농민혁명 이전 단계 등으로 한정짓는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 사실을 호도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특정 사실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편의적인 사료비판과 인용, 역사적 사실의 인과관계에 대한 부정과 단절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고부봉기는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에 맞서 사전에 준비된 사발통문 거사계획 등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고부관아를 점령한 사건으로, 이를 계기로 혁명의 전국화가 시작되었다. 즉 혁명의 주요 지도자들과 군중의 결집을 위한 명분과 상징적 의미를 갖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또한 고부봉기를 시작으로 무장봉기와 백산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는 혁명의 전국화에 필요한 단계적 결집과 과정이었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의 초기 과정은 사발통문 거사계획에 기반한 고부봉기를 시작으로, 군중을 백산에 결집시키기 위한 과정으로서 무장봉기, 동학농민군의 대오를 갖추고 혁명의 당위성과 성격을 명백히 밝힌 백산대회로 확대 지속되었다. 또한 무장봉기는 고부봉기에서 백산대회로 이어지는 연속선이자 거점이었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초기 과정은 하나의 연속선상으로 파악되며, 반봉건․반침략으로 이해되는 동학농민혁명의 진정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사발통문 거사계획과 고부봉기
  1) 사발통문 거사계획
  2) 고부봉기의 배경
 3. 고부봉기의 확대
  1) 고부에서 무장과 백산으로
  2) 무장에서 백산으로
  3) 고부봉기의 연속선상으로서 무장봉기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박대길 Park, Dae-Gil. 문학박사.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선양팀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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