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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분할을 통해서 본 불연기연(不然其然)과 지기(至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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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t Being So, and Yet Being So' and the Giki from the Infinitesimal Division Perspective

안호영

동학학회 동학학보 제34호 2015.03 pp.24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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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is to show that the ‘new post-cosmic creation’(開闢), in the logic of the ‘not being so, and yet being so'(不然其然) and ‘giki'(至氣), is both the experienced immediacy and the-human-nature-being-excited. First of all, we would notice that the problem of the 'not being so, and yet being so' is brought about in our attitude for the knowledge. If we would analyse photographically the intact and flowing knowledge, as the paradoxes of Zeno, there is exactly a thought which is only infinitesimally divided and retroactive. With the idea of the infinitesimal division, it is the verbalized consciousness that we would think of the thing which is not being able to accomplish through the language. Because infinitesimally dividing the conceptual time by this consciousness, its objects could be freezing, stationary and fragmentary. When we would specify, only logically and sequentially, the conceptual time which should be experienced, the ‘sicheonju’(侍天主) could be made a sense only in dividing both subject and object, and the ‘change of non-doing’(無爲而化) could be contaminated by the ‘seeking one's own interests’(各自爲心) at last. From now on, we would notice that there are various plays on words. However, ‘sicheonju’ and 'giki'does not think but experience, because of immediately achieving one, it must be something before logically specified. From now on, it could revealed that the various plays on words from being into the ‘seeking one's own interests’ could extinguish through the logic of the ‘not being so, and yet being so'. Then we would notice that the ‘new post-cosmic creation’ of mind is just the-human-nature-being-excited which is connected to the experienced immediacy. Finally we could confront the ultimate freedom.

한국어

이 논문은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논리와 지기(至氣) 개념 속에서 개벽(開闢)이 체험된 직접성이자 심성의 발현임을 보이려는 것이다. 먼저 불연기연은 앎[知]에 대한 태도에서 발생하는 문제임을 지적할 것이다. 전체이며 운동하는 앎을 정지시켜서 분석하려고 하는 한, 제논의 역설에서 드러나듯이 무한히 분할하거나 소급하는 극단의 사유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한분할의 관념을 통해 언어로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려는 것은 언어화하는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은 개념적 시간을 따라 무한히 분할하기 때문에, 그 대상은 정적이고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체험되어야 할 개념적 시간이 다만 논리적으로 규정될 때, 시천주(侍天主)는 주(主)와 객(客)의 양분 속에서만 의미를 갖게 되고, 무위이화(無爲而化)는 끝내 각자위심(各自爲心)으로 오염되어 버린다. 이로부터 다양한 희론(戱論)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시천주(侍天主)와 지기(至氣)는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논리적인 규정 이전의 어떤 것일 수밖에 없다. 이로부터 각자위심에 빠져서 만들어낸 수많은 희론이 불연기연의 논리 속에서 적멸(寂滅)한다는 것을 드러난다. 이로부터 마음의 개벽이 곧 체험된 직접성으로 연결되는 심성의 발현임을 보일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궁극의 자유와 마주하게 된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기
 2. 제논의 역설과 무한분할
 3. 제논의 역설로 읽는 개벽
 4. 무한분할로 읽는 불연기연
  1) 불연기연과 ‘지기'
  2) 무한분할과 불연기연
 5. 나오기: 무한분할 너머, 심성의 발현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안호영 Ho-Young Ahn.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파라미타칼리지 조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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