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When Je-Woo Choe Founded Dong-hak Revolutionary Movement in Gyeong-Ju area, Joo-Seo Kim had already led Dong-Hak Movement in Hanyang or Seoul. Chang-Han Choe's in Seoul was the headquarter of the Group Appeal Movement in February 1893. More than 840 Dong-hak followers from Seoul and Suwon region congregated at Boeun-Jangnaeri rally in March. There was a war during Donghak Peasant Revolution from June to July, 1894.
한국어
지금까지 동학 및 동학농민혁명사 연구가 전라도 전봉준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점차 지역이나 인물 연구가 확장되었지만 서울지역 동학활동이나 인물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서울지역의 동학 활동과 관련된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들이 문헌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는 다음과 같다. ① 동학 창도 시기인 1863년에 창도주 최제우가 접주제를 실시하고 13개소에 접소를 설치하면서 “경기(京畿, 서울 ․ 경기) 김주서(金周瑞)”라는 동학지도자가 초기부터 등장한다. ② 1889년 10월, 서울의 동학접주 신정엽(申禎燁, 경성인) 서인주(徐仁周 · 서장옥) 강한형(姜漢馨) 등이 체포되었다. ③ 1893년 광화문복합상소 시기에 동학교도 최창한(崔昌漢)의 집에 본부를 두고 활동했다. ④ 1893년 보은 장내리 집회에 “경성 ․ 수원접(京城 水原接) 840명”의 동학교도가 참가할 정도로 당시 서울 경기 지역에 동학 교세가 성했다. ⑤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될 때 동학교단은 조정이나 청국 일본군의 움직임을 신속하게 포착하고 있었는데, 이는 서울지역 동학교도의 왕성한 첩보 활동을 의미한다. ⑥ 동학농민혁명 시기(청일전쟁 중)인 6-7월에 서울에서 동학교도 23인이 봉기를 획책한 ‘동학당 경성 습격 통모 사건’(東學黨京城襲擊通謀事件)’이 계획되었으며, 1895년에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⑦ 동학농민혁명이 끝나자 앞의 ‘동학당 경성 습격 통모 사건’을 포함한 수많은 동학농민혁명 혐의자가 서울로 압송되어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 재판에 서울 지역의 많은 동학교도가 등장한다. ⑧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뒤 2세 교주 최시형이 원주 송골에서 체포되어 여주를 거쳐 서울 옥에 갇히자 수많은 동학지도자들이 서울에 잠입하여 동학 활동을 한다. 위 사건에 따르면 서울 지역이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시형이 체포된 뒤 서울로 압송되자 동학지도부가 서울로 잠입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동학 재건에 나서게 된다. 차츰 동학 교세가 성장하고, 뒷날 천도교로 개칭되어 3.1을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목차
1. 머리말
2. 교조 신원운동 시기의 동학 활동
3. 동학농민혁명 시기 활동
4. 동학농민혁명 이후 시기의 동학 활동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