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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에 뒤흔들린 민간인의 일상 - 민간인의 무신란(戊申亂) 체험 실기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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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vilian's daily life shaken by the war - Examining of two civilian's records about the Mu-sin-lan(戊申亂) -

박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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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paper looked through what damage the past war have caused to civilian by examining two records about the Mu-sin-lan(戊申亂, revolt of 李麟佐). That records are 「Mu-sin-nan-li(戊申亂離)」 of 『Son-wa-man-rok(巽窩謾錄)』 written by Kim- Kyeong-Chun(金敬天) and 「Mu-lan-rok(戊亂錄)」 of 『Mu-lan-rok(戊亂錄)』 written by Kim-Won-Jo(金遠祚). At that time 金敬天 was going to Seoul to take an civil service examination(文科). That was the first chance which he have gained through constant challenge for 50 years. Then he met the rebellion on his way. And the war made him give up the examination and turn back. At the same periods 金遠祚 met the rebellion at his home. The most painful thing to him occurred by the war was burying ancestral tablet for its safety. Because at that time ancestral tablet was the most precious thing to Korean. So he have delayed burying it as late as possible, and have restored it to the original state as soon as possible. Two records show concretely the damage that the past war have caused to civilians. So we have to consider them as important for the humanistic reflection upon war.

한국어

본고는 민간인이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 李麟佐의 난)을 겪고 쓴 실기 두 편을 검토하여 과거 전란이 민간의 생활인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 자세히 살폈다. 그 기록은 김경천(金敬天)이 쓴 『손와만록(巽窩謾錄)』 중의 「무신난리(戊申亂離)」, 김원조(金遠祚)가 쓴 『무란록(戊亂錄)』 중의 「무란록(戊亂錄)」이다. 향리 출신인 김경천은 이십일 세 이후로 줄곧 과거에 응시하다가 오십이 세가 되어서야 소과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고, 오십사 세가 된 무신년에 생애 처음으로 대망의 문과 회시를 치르기 위해 경상도 의성의 집을 나서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충청도 음성에서 난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즉시 발길을 돌려 집이 있는 남쪽으로 피란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김경천은 행여나 과거가 예정대로 시행되지 않을까 하는 집념과 기대로 위험천만한 북행을 계속했다. 그리하여 남한산성 아래까지 이르렀으나 거기서 앞길이 끊겨 끝내 서울행이 좌절되고 말았다. 김경천에게 무신란은 오십 평생을 바쳐 얻어 낸 대과 응시의 기회를 박탈한 통한의 사건이었다. 김원조는 당시 삼십사 세였으며, 충청도 공주의 자기 집에서 지내던 중에 난리를 당했다. 난리가 성해져 피란을 떠나야만 할 상황이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을 가장 괴롭힌 것은 신주의 안전을 위해 그것을 매안(埋安)해야 하는 일이었다. 조상께 신주가 땅에 묻히는 욕을 봬 드리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도 송구스러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행여 난리가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매안을 미루었고, 심지어 절차를 갖춰 신주를 매안하고 도로 꺼내기까지 했다가, 결국 피란에 앞서 매안을 단행했다. 그런가 하면 난리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자 바로 환안(還安)을 하려다가 주위의 만류로 단념했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피란처로부터 환가(還家)하기에 앞서 기어이 서둘러 환안을 해 드렸다. 김원조에게 무신란은 조상을 위하는 지극한 정성을 가로막고 심한 불안과 조민(躁悶)을 안긴 크나큰 장애였다. 지금까지 조선조 전란 실기에 관한 문학 분야의 연구가 대규모 외란인 임병양란의 실기를 위주로 해 온 가운데, 무신란 실기의 문학 연구는 매우 희소했으며, 「무신난리」․「무란록」에 관한 별도의 연구는 아직 없었다. 두 기록은 전란이 일상을 영위하던 민간인에게 끼친 피해를 특정 상황에 집중해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의의가 있어, 전란에 대한 인문학적 반성의 자리에서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무신난리(戊申亂離)」 : 난리에 가로막힌 오십 평생의과거길
 3. 「무란록(戊亂錄)」: 난리 통에 통곡하며 파묻은 신주
 4. 「무신난리」․「무란록」의 의의: 전란에 무너진 일상의 증언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박상석 Park, Sang-seok. 동아대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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