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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을 깊이 천착했던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토마스 하아디는 그의 소설 ꡔ비운의 쥬드ꡕ에서 19세기 말 영국의 기독교 사회와 이원론적인 가치체계를 비판하면서 헤브라이즘에 대응하는 헬레니즘과 스윈번의 이교주의는 물론 “이상주의적인 일원론”(idealistic monism)의 구축을 시도한다. 그의 일원론은 심미적인 “생성”세계로서 윤리적인 “존재”세계의 특성을 갖는 플라톤-기독교적인 이원론과 억압적인 가부장제를 해체하며 몸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을 제기한다. 하아디는 이 작품의 서두를 역사적 뿌리로부터 차단되고 문화의 기원에 대한 모든 인식이 상실된 마을의 묘사로 시작한다. 그는 첫 장면에서 신은 자연의 생성과정에서 더 이상 주재자가 아님을 제시함으로써 그의 일원론의 제 일차적인 특성을 신이 배제된 무신론적인 일원론이자 유기체적인 일원론으로 설정하며 이를 작품 전체의 토대로 삼는다.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이러한 일원론은 플라톤과 기독교의 자연에 대한 오류적인 이원화 그리고 직선적 사유를 거부하는 순환적 사유로 나타나며 이는 남녀관계를 포함한 모든 이항 대립적 요소들을 상보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로 인식시킨다. 쥬드와 수우의 관계 역시 한 몸에서 나온 쌍둥이 신인 아폴로와 다이애너가 19세기 빅토리아조 영국에 나타난 현대적인 화신으로 서술된다. 또한 하아디는 그의 일원론적 사유 속에서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로 바라보던 전통적인 이성주의적 인간관에서 인간을 “느낌의 존재” (feeler)로, 즉 인간의 몸은 느낌의 체계이며 인간의 본성은 추하고 타락한 것이 아니라 고결한 것으로 파악하는 근원적인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위해 이 작품은 지속적으로 인간의 자연적 본능은 온전히 건강한 것이며 인간 몸의 소리는 훨씬 순수하고 정직한 것이라는 것을 실증해 보인다. 본능의 소리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구식의 인간인 필로스톤 조차 결혼과 결혼윤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이르게 해서 남자 없이 여성과 아이들만으로도 가족의 단위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생각에까지 이르게 해 준다.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의지를 발동하고 최종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수행키 위해 몸의 욕망을 억제하는 과정을 밟는 ‘이성에서 몸으로’ 진행하는 서구적 방식과는 달리 몸에서 이성으로 진행하는 ‘몸을 통한 깨달음’이라는 방식을 통해 사회적 안목을 확대해 감을 보여준다. 이러한 몸의 인식은 하아디로 하여금 남녀간의 “성적인 사랑”을 통한 유기적 결합은 도덕과 종교적 도그마가 가져다 줄 수 없는 자기인식으로 가는 길이며 따라서 대학 졸업생이나 목사 혹은 교구사제가 되느니 한 여성을 사랑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주장을 가능케 해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사회적 혼란은 인간의 본능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문명의 인위적 산물이라는 하아디의 주장은 설득력을 지닌다. 자연을 유기적 전체로 보는 그의 통합적인 심미적 사유 속에서는 세상은 모든 요소의 동시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져 가는 것이며 따라서 기독교 문화 저변에 놓여 있는 모든 이원적 사유와 저열한 배타성은 철저히 거부된다. 인간을 느낌의 존재로 보는 하아디에게 있어서는 이성이란 느낌의 일부일 뿐이며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은 분리되지 않는다. 쥬드가 결국 크리스트민스터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의 깨달음의 사회적 실천행위로서 진리와 숭고한 이상은 사회적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보는 하아디의 사유 속에서는 당연한 귀결로 나타난다. 하아디의 생성적 일원론은 결국 사회적 구원을 위한 반기독교주의이며 기쁨과 행복이 위를 향하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여기”로 향하는 무신론적인 휴머니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