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Joseon took some actions to modernize its army, but they had not worked as effectively as was expected under the intervention of China, Japan and Russia. It was because in the power balance of Russia and Japan, Emperor Gojong changed the name of his country from Joseon to Korean Empire and tried to enhance its military by strengthening its Siwidae(Royal Army), but Japan, after winning the war between Russia and Japan, reduced Siwidae and Jinwidae(Defense forces) of Korean Empire. The soldiers of Siwidae protested violently against the Japanese imperialists' pillage of sovereignty and disbanding the army. When Emperor Gojong was forced out of power, the soldiers of Siwidae deserted from barracks and fired Japanese police officers. And August 1, 1907 when the army was disbanded as a result of Jeongmi Treaty, Pak Seungwhan, the 1st battalion commander of the 1st regiment, kiled himself out of protest. This accident resulted in the armed uprising of the 1st battalions of the 1st and the 2nd regiment, and they fought street battles with Japanese army near the South Gate and Seoso Gate. Especially this battle has to be called Seoso Gate Battle after the last battle place, Seoso Gate. The armed uprising of Siwidae in Seoso Gate caused the armed uprising of Jinwidae. After that, the disbanded soldiers began to join patriotic soldiers and the struggle of the patriotic soldiers made progress militarily. Huh wi, the commander of patriotic soldiers since Eulmi battle, admitted the disbanded soldiers and fought fiercely against Japanese soldiers in Gyeonggi and Gangwon province.
한국어
조선은 개항 이후 군대의 신식화에 앞장섰으나 청, 일, 러의 간섭으로 군사적 자주화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지 못하였다. 청일전쟁 이후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 균형속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시위대를 강화하여 군사력을 증강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한제국의 군대인 시위대와 진위대를 축소시켰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의 중앙군이었던 시위대는 국권피탈과 군대 해산에 맞서 격렬히 저항하였다.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를 당하자 일부 병력이 탈영하여 일본 경찰에 발포하는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어 정미7조약으로 1907년 8월 1일을 군대가 해산당하자 서소문 시위대의 제1연대 제1대대장 참령 박승환은 자결 순국으로 저항하였다. 이 소식은 제1연대 제1대대와 제2연대 제1대대의 무장봉기로 이어져 일본군과 남대문과 서소문 일대에서 시가전을 벌였다. 특히 시가전의 마지막은 서소문 시위대 병영에서 이루어져 이 전투의 명칭은 서소문전투로 명명되어야 한다. 서소문의 시위대 봉기는 지방의 진위대로 이어졌다. 이후 해산군인들은 의병에 가담하여 의병항쟁은 군사적으로 한 단계 발전하였다. 을미의병부터 활약한 의병장 허위는 해산군인들을 영입하여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한 대표적 의병장이었다.
목차
1. 머리말
2. 시위대의 설치와 운영
3. 고종의 퇴위와 시위대의 저항
4. 군대 해산과 시위대의 서소문전투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