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building process of urban space and architecture in the first half of twenty century in Dairenn / Dalny
20세기 초 대련의 도시공간형성과 건축
초록
영어
This paper focuses on Dalian where urban construction advanced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as a specific example of the theme of the symposium "The Social History Space and Movement in East Asia : Empire, Decolonization, and the Cold War", the emperor Russia and Japanese colonial rule Think of the modernity of East Asia through the urban space formed by, the characteristics of the architectures built there, and the figures of the architects who worked there. Darliny (Dalian), where urban construction began as part of Imperial Russia 's global strategy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was built as a multi - core radiation city in East Asia. There, a memorable baroque city planning, an urban area construction considering the topography, a supremacy according to the race, and a port construction on the premise of the land and sea contact were advanced. However, due to the Russo-Japanese War in the middle of the construction, only a small part of the urban area was established as a city. As a result of the Russo-Japanese War, Dalian became a leasehold land of Japan, a urban space was formed by building a building by the design of a Japanese architect, while urban planning by Imperial Russia was followed. There, a memorable baroque city planning, an urban area construction considering the topography, a supremacy according to the race, and a port construction on the premise of the land and sea contact were advanced. However, due to the Russo-Japanese War in the middle of the construction, only a small part of the urban area was established as a city. As a result, around 1930, urban space was established in the range that Emperor Russia planned, but it is a building that aims at urban beauty and noncombustiblization along with a memorable baroque city planning Was formed. Generally, in the colonial city construction which the Western powers developed in various parts of the world, it was common to build a building equivalent to the building of their own country in colonial cities, but in Dalian, despite being under Japanese rule, It was a big difference that the so-called "Japanese architecture" was limited to religious buildings and some relaxing facilities. Therefore, for Japanese who lived in Dalian from within Japan, 'Western-style urban space' was established which can not be experienced in local cities in the country. Also, Japanese architects who designed these buildings were developing activities reflecting the political situation of this time Japan had dominance in East Asia.
한국어
본고에서는 20세기 전반, 도시건설이 활발히 이루어진 다롄에 착목하여 제정러시아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 형성된 도시공간과 그 공간에 건축된 건축의 특징, 그리고 그 시기활동한 건축가의 인물상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근대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19세기 말 제정러시아의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서 도시건설이 시작된 다르니(대련)는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다심방사형의 시가지 건설이 추진되었다. 또한 기호성 높은 바로크적 도시계획 아래, 지형을 고려한 시가지건설, 인종에 따른 거주지 구분, 해상과 육상을 잇는 항만건설 등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도시 건설이 한참이던 가운데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이로 인해 시가지는 극히 일부가 갖추어지는데 그친다. 이후 러일전쟁의 결과, 다롄은 일본의 조차지가 된다. 이 시기에는 제정 러시아에 의한 도시계획을 답습하면서도 일본인 건축가에 의한 건물이 세워지며 도시공간을 형성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경제활동과 도시생활을 지지하는 기반시설의 건설, 도시의 미관과 불연화를 유도하는 건축규칙의 시행, 도시건설로서 세계적 수준의 건축이라 부를 만한 건물의 설계와 건설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1930년 경에는 이미 제정러시아가 계획하고 있던 범위에서의 도시공간이 성립하였으나, 그것은 기호성이 높은 바로크적 도시계획 위에 미관과 불연화를 지향하는 건물들이 들어서는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서구열강이 세계 각국에서 전개한 식민지도시건설의 경우, 자국의 건축과 비슷한 건축물을 식민지도시에서 건설하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나, 다롄의 경우 일본 지배하에 지어진 소위 ‘일본적 건축물’은 종교적인 건물을 중심으로 극히 일부에 한정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일본 본토에서 다롄에 이주하여 살던 일본인에게 다롄은 본토의 지방도시에서는 체험하지 못한 ‘서양풍의 도시공간’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 된다. 또한 이러한 건축물을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는 당시의 정치상황을 반영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일본어
本稿は、シンポジウムのテーマ「空間と移動から見た東アジアの近代」に対し、その具体的事例として、20世紀前半に都市建設が進んだ大連に着目し、帝政ロシアと日本の植民地支配化で形成された都市空間とそこに建てられた建築の特徴、そして、そこで活動した建築家の人物像を通して、東アジアの近代を考えるものである。 19世紀末、帝政ロシアの世界戦略の一環として都市建設が始まったダーリニー(大連)は、東アジア唯一の多心放射型都市として市街地の建設が進められた。そこでは、記念性の高いバロック的都市計画、地形を考慮した市街地建設、人種に応じたすみ分け、海陸連絡を前提とした港湾建設、が進められた。ただし、建設途中で日露戦争になったため、都市として成立していた市街地はごく一部であった。 日露戦争の結果、大連は日本の租借地となり、帝政ロシアによる都市計画が踏襲されながら、日本人建築家の設計による建物が建てられることによって、都市空間が形成された。その過程で、経済活動と都市生活を支える基盤施設の建設、都市の美観や不燃化を誘導する建築規則の実施、都市施設として世界的水準にあったいわば「世界建築」とも呼ぶべき建物が設計、建設された。その結果、1930年頃には、かつて、帝政ロシアが計画していた範囲での都市空間が成立したが、それは、記念性の高いバロック的都市計画の上に美観と不燃化を目指した建物が建ち並ぶことで形成された。一般的に、欧米列強が世界各地で展開した植民都市建設では、自国の建築と同等の建築を植民都市で建てることがよくあったが、大連では、日本支配下に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いわゆる「日本建築」は宗教建築や一部の遊興施設に限定されていたことが大きな違いであった。したがって、日本国内から大連に移り住んできた日本人にとって、国内の地方都市では体験できない、「洋風の都市空間」が成立していた。また、これらの建築物を設計した日本人建築家は、日本が東アジアに支配地を持ったこの時期の政治状況を反映した活動を展開していた。
목차
1. 帝政ロシアによるダーリニー建設
2. ダーリニーから大連への移行
3. 都市の不燃化と美観
4. 都市の構成要素としての建築
5. 移動の視点から見た日本人建築家の活動
結 20世紀都市としての大連
reference
국문 abstract
일문 abstract
영문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