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고려시대 정취보살 신앙과 정취보살도 - 보타락가산 신앙의 또 다른 측면-
초록
영어
Unlike in China and Japan, the Ananyagāmin faith, along with the Avalokiteśvara faith, constituted an additional pillar of the Mount Potalaka faith during the Goryeo period in Korea. Historical records on Naksan-sa Temple in Yangyang in the Samguk 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and records on the creation of the statues of Avalokiteśvara and Ananyagāmin at Yongam-sa Temple in Jinju are clear illustrations of the nature of the Mount Potalaka faith of the Goryeo period. Statues of Ananyagāmin are enshrined together with those of Avalokiteśvara in both Naksan-sa Temple and Yongam-sa Temple; and Naksan-sa Temple is situated on Naksan Mountain (Korea’s Mount Potalaka) – the point of encounter between Ananyagāmin Bodhisattva and Sudhana, and the place where Avalokiteśvara Bodhisattva is believed to live. Books like The Pilgrimage of Sudhana, written during China’s Song Dynasty and transmitted to and subsequently widely read throughout Goryeo, paved the way for the Mount Potalaka faith, which combined the Ananyagāmin and Avalokiteśvara faiths, to embed itself firmly within Goryeo’s culture. However, as the aforementioned books have not survived to the present day in Korea, records in books written by Uicheon, such as the Collected Writings of the State Preceptor Daegak or Wonjong mullyu (A book of collected writings and commentaries by the Hwaeom masters), serve instead as a testament to the plausibility of their introduction during the Goryeo period. The open and embracing attitude of Goryeo-era Hwaeom masters towards such ideas as Li Tongxuan’s theory on the “oneness of wisdom and compassion” may have contributed to the unique nature of the Mount Potalaka faith, which combines the Ananyagāmin and Avalokiteśvara faiths and is distinct from that of China’s Song Dynasty or Japan’s Kamakura Period - where The Pilgrimage of Sudhana and similar books were just as widely read as in Goryeo, but where no signs or traces of the Ananyagāmin faith are to be found. This study newly suggests that the
한국어
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 고려시대의 보타락가산 신앙은 관음신앙과 함께 정취신앙도 그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양양 낙산사에 대한 『삼국유사』 기록을 비롯하여 진주 용암사의 관음보살상과 정취보살상 조성 기록은 고려 보타락가산 신앙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관음보살상과 함께 정취보살상이 봉안된 양양 낙산사와 진주 용암사는 관음보살의 상주처이자 정취보살과 선재동자의 만남의 장소인 보타락가산이 고려화한 곳이었다. 관음신앙과 정취신앙이 결합된 보타락가산 신앙이 고려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중국의 송대에 성립하여 고려에 유입되고 성행하였던 선재동자역참도(善財童子歷參圖) 류의 서적이 크게 작용하였다. 현재 국내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선재동자역참도 류의 서책이 고려에 유입되었을 개연성은 의천의 『대각국사문집』과 『원종문류』의 기록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고려와 똑같이 선재동자역참도 류가 성행하였지만 정취신앙이 성립되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중국의 송대나 일본의 겸창기(鎌倉期)와 달리 고려에서 정취신앙이 관음신앙과 결합하여 독특한 보타락가산 신앙을 이룬 배경에는 이통현의 지비일체론(智悲一體論) 등의 주장에 호의적인 고려 화엄학승들의 역할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필자는 고려 정취신앙을 반영한 현존 미술품으로서 일본 경도(京都) 천초사(淺草寺)의 <정취보살도>를 새로이 제시하였다. 물가에 선 선재동자로부터 그림의 배경이 보타락가산이며, 보살의 보관에 안치된 화불, 두 손에 쥔 버들가지와 정병 등의 도상으로부터 관음보살도로 판단되었던 그간의 주장들에 반해, 입상이라는 자세, 물방울 모양의 광배, 물 또는 허공처럼 아무 것도 없는 배경 등으로부터 오히려 보타락가산의 정취보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고려에서 성행한 이후 조선 후기 17세기까지 명맥을 이어가던 정취신앙은 조선 후기 18세기 이후에는 거의 사라져 버린 듯하다. 낙산사와 용암사에 봉안되었던 정취보살상은 모두 회신하여 지금은 단 한 점의 정취보살상도 유존하지 않게 되었으며, 자비의 상징인 관음보살과 지혜의 상징인 정취보살이 서로 보완하여 지비일체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고려의 보타락가산 신앙은 지혜를 잃고 자비만 남긴 불완전한 신앙으로 남게 되었다. 천초사 입상 정취보살도의 재발견은 정취보살의 존명 회복을 통해 관음과 정취의 지비회통(智悲會通)을 추구하였던 한국 보타락가산 신앙을 완전하게 복원하는 작업이었으며, 좌상 수월관음도와 입상 정취보살도가 하나의 세트를 이룸은 완전한 보타락가산 보살도의 완성을 의미한다.
목차
1. 서론
2. 화엄경 입법계품과 관음ㆍ정취 신앙
3. 善財童子歷參圖의 유포와 관음ㆍ정취보살도
4. 고려의 正趣菩薩圖: 일본 淺草寺 보살도의 존명 再考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