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Since the introduction of the Catholic Church in Korea, the Church experienced many persecutions and the Byeongin(丙寅)Persecution was the most representative one. Although it was carried out in earnest from 1866 to 1873, there are not many studies on this issue. And, there is no specific study on the Catholic believers who were caught at the time of persecution in Gangwon area. This study examined the official records such as “Podocheongdeungrok(捕盜廳謄錄)” and “Chuangeupgukan(推案 及鞫案)” and Church resources such as “Byeonginchimyeongsajeok” and “Chimyeongilgi” in order to examine the motives of becoming Catholic believers and practices of beliefs in Gangwon area. Catholic believers in the Gangwon area meant those who were born and raised in this area, those who escaped here, and those who were caught in the area. Catholic believers in Gangwon area figured out through “Podocheongdeungrok” and “Chuangeupgukan”, “Byeonginchimyeongsajeok” and “Chimyeongilgi” are as follows. Firstly, 64 people were identified as Catholic believers in the Gangwon area. As for the gender ratio, men were 45 and women were 19. Men were twice more than women. Secondly, among 64 people, 41 were clearly identified as coming from the Gangwon area, 17 were those caught in the Gangwon area, and the remaining 14 people were from other areas and were caught in Gangwon area. 23of them were born in Hoengseong(橫城), and most of them were living in Hoengseong area when they were caught. Thirdly, 26 out of 64 people showed their motives of being Catholic believers. Among these 26 persons, 4 people were admitted to the Church by family and 17 people were admitted by their acquaintances. 5 of them were admitted because of personal disease, which indicated that they were admitted for the next world oriented mind. Fourthly, they were tied with family relations. Out of all 61 people, 30 were identified as family members. This implies that the Catholic clan village formed a community of faith based on a blood relationship. Fifthly, in their practice of faith, 49 out of 64 people had baptismal names. Thus, most of them seemed to be baptized. Yet, only 4 of them have received confirmation, and only 4 read the catechism. It seems that they learned catechism via oral education and recitation rather than the concrete study through the catechism. This can be a distribution of doctrine through oral tradition, which is the way in which the doctrines of Catholicism were transmitted and maintained in the midst of hardships and long persecution. Such is their faith. Sixthly, the arrest timing of 64 believers in Gangwon area was 1868, the Mujin(戊辰)Year. Seventhly, among 64 of the Gangwon area believers, 3 mentioned apostasy directly, and the remaining 61 people chose martyrdom by saying 'I expect your disposition' or 'I cannot apostate'. Among them, 9 believers were disposed as “Mulgo(物故)” which means that specific type of martyrdom is not identified. 21 were identified for their martyrdom as hanging.
한국어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래, 여러 번의 박해를 경험하였고,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병인박해(丙寅迫害)라 할 수 있다. 병인박해는 1866년부터 1873년까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이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으며, 더구나 강원지역에서 박해 당시에 잡힌 신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본고에서는 관찬(官撰)자료인 《포도청등록(捕盜廳謄錄)》 과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과 교회 측 자료인 《병인치명사적》 , 《치명일기》 를 통해서 병인박해기 강원지역과 관련된 신자들의 입교동기 및 신앙실천 모습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강원지역 관련 신자라 함은,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 이곳으로 피신을왔던 사람, 그리고 이 지역에서 잡힌 사람을 이야기한다. 《포도청등록》 , 《추안급국안》 , 《병인치명사적》 , 《치명일기》 를 통해서 강원지역 관련 신자들을 파악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첫째, 강원지역 관련 신자들로 파악된 사람은 모두 64명이다. 이 64명의 남녀 비율을 살펴보면, 남성이 45명, 여성이 19명으로 남성이 2배 정도 많다. 둘째, 64명 중 강원지역 출신이라고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람은 41명이며, 대부분들의 사람들이 강원지역에서 잡힌 사람들이고, 다른 지역 출신으로 강원도로 피해 와서 잡힌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출신지역이 강원도임이 확인된 이들 중 23명이 횡성 태생이고, 출신지역이 드러나지는 않는 신자들의 경우 대부분이 횡성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가 잡혔다. 셋째, 64명 중 입교동기를 밝히고 있는 신자는 26명이다. 이들 26명 중 가족에 의한 입교가 4명, 지인에 의한 입교는 17명이다. 5명은 신병(身病)이나 다른 이유를 통해 입교한 것으로, 내세지향성 입교임을 확인할 수 있다. 넷째, 가족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64명 중 가족관계임이 확인되는 것은 모두 30명이다. 이는 천주교 교우촌이 혈연적 유대관계를 기초로 하여 신앙공동체를 구성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섯째, 신앙실천 모습에 있어서, 64명 중 49명이 세례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은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중 견진까지 받은 사람은 4명에 그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교리서는 본 신자들 역시 4명에 그치고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교리서를 통해서 학습을 했다기보다는 지인을 통해 입교한 이후에, 구습(口習)으로 교리를 배우고, 송습(誦習)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구전을 통한 교리의 전파라 할 수 있으며, 이는 교리서적을 쉽게 볼 수 없는 어려움과 긴 박해의 과정 속에서도 천주교의 교리가 전래되고 유지되는 방책이었으며 이 자체가 그들의 신앙이었다고 여겨진다. 여섯째, 병인박해기 강원지역 관련 신자 64명의 체포 시기는 무진년(戊辰年) 즉 1868년에 집중되어 있다. 일곱 번째, 64명의 강원지역 신자 중 직접적으로 배교(背敎)를 언급한 사람은 3명이며, 나머지 61명은 ‘처분만을 바란다’ 거나 ‘배교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순교를 택하고 있다. 이들 중 물고(物故)라고 되어 있어 구체적인 순교 형태를 알 수 없는 신자가 9명이고, 구체적으로 순교형태가 드러난 신자는 21명으로 교수(絞首)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강원지역 관련 신자들
1. 포도청등록
2. 병인치명사적
3. 치명일기
Ⅲ. 인물에 대한 분석
Ⅳ. 입교 동기 및 신앙의 실천 모습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