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A monk artisan Chimgye Min Yeol left records of works for almost 40 years from 1856 to 1891 which is the longest among artisans in late Joseon. Furthermore, Buddhist temples that he participated in construction directly were 13 with 16 unites including Bongeunsa Temple Panjeon. His works are found in diverse areas including Chungcheong-do, Gyeonggi-do, Gyeongsangbuk-do and Gangwon-do. While there was no great construction or reconstruction performed in the 19th century, he demonstrated his capacity as an artisan fully in various areas including Panjeon, Amja, Daebang, Geukrakjeon and Bogwangjeon. The construction techniques that monk artisan Min Yeol used to use are as follows. Firstly, as for the floor plan of temple by Min Yeol, the number of room and size were set freely according to the features of Garam and temple, he seemed to prefer Jeongkan stress style floor for Jukan. He also preferred 3 cheok unit Jukan to 4 cheok unit Jukan which was generally employed at a general temple. Secondly, as for layout and specific techniques of Gongpo in temple, he basically adopted Yeonhaw Soiseo style which was the most widely used in the late Joseon period. Its composition and display method are shown in Dorisa Temple Geukrakjeon, Namgwangsa Temple Bogwangjeon and Hwagyesa Temple Daewoongjeon. Thirdly, the furniture of temple was composed with 5 Ryangga regardless of building size and uses. As for the size of the Buddhist alter, it used small one with around 3m which was also in common. For roof, it did not use connection strcture between Jangyeon and Danyeon, but adopted Deotseggarae structure where Jangyeon was overlapped on Danyeon. Fourthly, specific techniques of temple adopted by Min Yeol include finishing of wall with Panbyeok, use of Anchogong in a luxurious way and finish of Gakhyeong without decoration at Changbang, Pyeongbang and Bbaelmok, which were in common.
한국어
19세기 승려장인 침계민열의 건축기법 연구라는 주제로 진행된 본고에서 19세 기 전국적인 사찰불사의 장인 현황을 분석해본 결과 기존 연구를 통해 막연하게 19세기는 승려장인의 불사 참여 비율이 감소하고 민간장인이 늘어난다는 견해에 서 조금 더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각 지역마다 민간 장인의 불사 참여비율이 조금 씩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특히 경상도 지역의 경우 19세기 말기까지 승려장인과 민간장인 불사참여 비율이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어서 19세기 승려장인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침계민열의 활동지역과 건 축기법에 대하여 검토해 보았다. 침계민열은 1856년~1891년까지 약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활약했던 기록을 남 기고 있는 인물로 조선후기 장인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활동했다. 더욱이 그가 직접적으로 조성에 참여한 불전은 봉은사 판전 외 13개 사찰 16동에 달한다. 민열 이 조성한 불전이 남아 있는 지역은 충청도와 서울 경기도, 경상북도, 강원도 등 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에 해당한다. 민열이 활동하던 19세기 사찰에서는 대 대적인 중건·중수가 진행되는 기간은 아니지만, 그가 중수에 참여했던 불전은 판전, 암자중수, 대방, 등의 여러 전각의 다양한 분야에 참여하여 장인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승장 민열이 즐겨 사용했던 건축기법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민열 불전의 평면구성은 가람 및 불전의 특징에 맞게 칸수와 규모를 자 유롭게 설정한 반면, 주칸은 정칸강조형 평면을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 반불전에서 즐겨 사용했던 4척 간격의 단위를 사용하는 주칸 간격이 아닌 3척 단 위의 주칸을 선호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두 번째, 민열 불전 공포의 배치 및 세부기법은 조선후기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연화쇠서형을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짜임과 배치방법은 도리사 극 락전, 남장사 보광전, 화계사 대웅전 등에서 대동소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 번째, 민열 불전의 가구는 건물의 규모와 용도에 상관없이 5량가를 기본으 로 구성하고, 불단 크기 역시 3m 내외 작은 불단을 사용하는 공통점이 나타나고 있다. 지붕은 장연과 단연이 연결되는 구조를 사용하지 않고, 장연이 단연 위에 중복되는 구조인 덧서까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네 번째, 민열 불전의 세부기법은 벽체를 판벽으로 모두 마감한 방식과 안초공 을 화려하게 사용하고 있는 점, 화려한 안초공에 비해 창방·평방 뺄목에서 장식 을 배제한 각형으로 마감하고 있는 점 등의 요소가 모든 불전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목차
Ⅱ. 19세기 사찰불사 현황과 승장
Ⅲ. 승장 민열의 활동시기와 지역
Ⅳ. 민열의 건축기법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