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studies the Buddhist monk Geummun, who sculpted the seated wood Sakyamuni statue, enshrined at Bongdeoksa in Anseong-si, Gyeonggi-do. This Sakyamuni statue was examined by the request of the temple adminstration in December 6th 2013, and during this research process, a votive document was uncovered inside of this statue. This votive document provides the exact production date, 10th July 1666 of the lunar calender, but there is no indication of the original enshrined temple’s location. Three monk sculptors, whose names are Geummun, Beomnim and Bogwan, participated in to render this Sakyamuni. If we presumed that a normal duration to complete carving, varnishing with lacquer and glittering process was four months, this Buddha rendering project would started at least the first ten days of June of the lunar calender. As one of the prominent monk sculptors in the late Joseon dynasty’s Buddhist sculpture history, Geummun took part in various Buddha rendering projects. He worked with his master, Hyehui, to render Beopjusa wood seated Avalokitesvara statue in 1655 and Seonggwangsa wood seated Avalokitesvara in 1662. In 1666, he led this wood seated Buddha rendering project, and he participated in Jikjisa stone seated Vairocana triad rendering project. As a leading master, he carved Hoengseong-gun Bongboksa wood seated Avalokitesvara statue and repaired Gangnam-gu Bongeunsa’s votive tablet. In 1703, he re-glittered Gijang-gun Jangansa’s stone stead Buddha triad, and created Anseong-si Chiljangsa’ Underworld hall’s statues. This Chiljangsa’s project seems to be Geummun’s last mission. Among these written record, he sometime used a kind of official title in front of this name. If we consider that such a title was given for the people, who provided financial or physical contribution for the government project, Geummun would have a chance to be involved such activities. This Sakyamuni is a medium-sized wooden statue with a height of 84.6 centimeters. The upper body of the statue inclines forward with a slight tilt. The ratio between a head size and its height is 1:035. The round beads of the Sakyamuni’s curly hair and the protrusions on the head are separated with an unclear border. On its oval face are narrowed eyes with a slight upward slant, a plain cylindrical nose, and faintly smiling mouth. The right hand is placed on the lap, striking the pose for the hand seal of touching the earth, or the subjugation of evil, while the left hand is on the lap with the thumb touching the middle finger. The robe drapes from the right shoulder in a gentle curve from below the neck to the elbow, passing the belly towards the left shoulder. The rest of the robe covers the lower body, with a strand gently stretching under the belly. Underneath of robe, this Buddha statue left arm’s bare skin is revealed. This carving way became a iconic way to represent Sakyamuni Buddha. The undergarment on the chest is horizontally folded on the upper part to make a round shape on the front. This study finds that Geummun belongs to the genealogy of great monk sculptors school, whoese members were composed of Taejeon(-1600-1615-), Beomnyeong(-1615~1641-), Hyehui(-1640~1677-), Mail(-1655~1701-), Geummun (-1655~1706-), Cheongyun(-1665~1744-),Yeochan(-1706~1746-), Segyun(-1703~ 1723-), Chwiseup(-1706~1711-), Samin(-1693~1711-).
한국어
본 논문은 경기도 안성시 봉덕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제작 한 金文비구에 관한 연구이다. 이 여래상은 2013년 12월 6일에 사찰의 의뢰를 받 아 성보문화재를 조사하면서 대웅전 목조여래좌상의 복장 조사를 통하여 조성발 원문을 확인하였다.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1666년 7월에 석가여래를 제작하였는데, 조성 사찰이 언 급되어 있지 않다. 불상 제작에는 화원 금문, 法林, 普寬이 참여하여 음력 7월 10일 에 완성된 것을 보면, 불상 제작에 3개월, 옷칠과 개금에 1개월 정도가 소요된 것 으로 추정되어 3월 초부터 제작을 시작하였을 것이다. 다만 조성 사찰이 언급되지 않는데, 사찰에 거주한 스님이 靈訔, 圭哲, 敬修 등 25명으로 언급되 상당히 큰 사 찰에 봉안되었던 불상으로 볼 수 있다. 이 불상을 제작한 금문의 생애는 1635년경에 태어나 출가한 후 수련기를 거쳐 혜희와 1655년에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불상과 1662년에 순천 송광사 관음전 보 살상을 조성하고, 1666년에 수화승으로 안성 봉덕사에 봉안된 불상을 제작하였 다. 또한 금문은 1668년에 수화승 승일과 김천 직지사 비로전 불상을, 1676년에 수화승 혜희와 완주 안심사 화장암 불상(김제 금복사 봉안)을 제작하였다. 이후 수화승으로 1686년에 횡성 봉복사 반야암 목조관음보살좌상(원주 구룡사 봉안) 을 조성하고, 1701년에 강남 봉은사 목조불패를 개조하였으며, 1703년에 기장 장 안사 석조삼세불좌상을 중수․도금하였다. 그의 마지막 기년명 불상은 1706년에 안성 칠장사 명부전 불상이 조사되었다. 금문 스님은 주로 혜희와 불상 제작에 참 여하고, 혜희가 1650년대 살았던 충남 공주 계룡산 근방에 거주하면서 경기와 충 청도 사찰이나 암자에 불상을 제작하였다. 1703년 이전에 종이품(從二品) 문무관 의 품계에 해당하는 가선(嘉善)의 공명첩을 이름 앞에 쓴 것으로 보아 국가적인 사업에 참여하거나 국가에서 발급한 공명첩을 구매했을 가능성도 있다. 금문이 만든 대표적인 작품인 안성 봉덕사 목조여래좌상은 높이가 86.4㎝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중형 불상에 속하는 작품이다. 불상은 얼굴을 앞으로 약간 내 밀어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신체와 얼굴이 1:0.35의 비율로 17세기 전반에 제 작된 불상보다 신체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도 3). 앞으로 숙인 머리 에는 뾰족한 나발(螺髮)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가 표현되고, 정상부에 좁고 높은 원통형의 정상계주(頂 上髻珠)와 이마 위에 가늘고 좁은 반원형의 중간계 주(中間髻珠)가 있다. 방형의 얼굴에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가 반쯤 뜬 눈, 콧 등이 평평한 삼각형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을 하고 있다. 왼손은 엄지와 중지 를 둥글게 맞대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펴고 바닥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을 취하 고 있다. 바깥에 걸친 두꺼운 대의(大衣)는 변형통견으로, 대의자락이 오른쪽 어 깨를 거의 대각선으로 걸친 후,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 대쪽 대의자락은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내려와 하반신에 펼쳐져 있다. 하반신 을 덮은 옷자락은 복부에서 한 가닥이 넓게 펼쳐지고, 끝단이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대의 안쪽에는 편삼을 입지 않아 맨살이 드러나고, 이와 같이 편삼을 걸치 지 않은 여래상의 착의법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석가불에 공통으로 나타난다. 대 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僧脚崎)는 수평으로 접어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하여 조각승 금문은 태전(-1600~1615-)→법령(-1615~1641-)→ 혜희(-1640~1677-)→마일(-1655~1701-), 금문(-1655~1706-), 청윤(-1665~1744-) →여찬(-1706~1746-), 세균(-1703~1723-), 취습(-1706~1711-), 삼인(-1693~1711-) 등으로 이어지는 17-18세기를 대표적인 조각승 계보에 속하는 스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차
Ⅱ. 안성 봉덕사 목조여래좌상과 조성발원문
1. 목조여래좌상
2. 조성발원문
Ⅲ. 조각승 금문(金文)의 활동과 그 계보 및 불상 양식
1. 금문의 활동
2. 금문의 조각승 계보
3. 17세기 후반 금문 작 불상 양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