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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大允의 『書集傳』 ‘湯ㆍ武 放伐’論에 대한 辨正 意味 - 심대윤의 『書經蔡傳辨正』의 분석을 중심으로-

원문정보

The Implication of Sim Dae-yun’s Corrective Criticism of the Theory of Tang-mu Revolution (the Expulsions of disqualified Monarchs by King Tang and King mu) Mentioned in the Collected Commentaries on the Book of Documents (書集傳)

심대윤의 『서집전』 ‘탕ㆍ무 방벌’론에 대한 변정 의미 - 심대윤의 『서경채전변정』의 분석을 중심으로-

장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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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Sim Dae-yun(1806〜1872)'s academic system is linked with Yangming School's spiritual world which was embraced by Hagok Jeong Je-du (1649∼1736) and Ganghwa School. It was around in 1860 when Suun Choe Je-u(1824〜1864) launched Donghak (Korean Neo-Confucian academic movement) that Sim Dae-yun began to write the Corrective Commentary on the Cai Shen's Compiled Books (蔡傳辨正, "the Corrective Commentary on Cai Shen"). In the 1860s, the Joseon society was embroiled in serious confusion and crisis. Whereupon, Sim Dae-yun reconstructed Mencius's Theory of Tang-Wu Revolution in line with the then situations and published it in his Corrective Commentary on Cai Shen. In the despotic feudal dynasty system under the Neo-Confucian order, the theory had been long forgotten. In the preface of the Corrective Commentary on Cai Shen, he mentions his motivation behind the writing; He wanted to correct Cai Shen's damage or distortion of the true intention of the former kings of Yao Shun Yu Tang Wen Wu regarding the Theory of Tang-Wu Revolution. He further said in the corrective commentary: "If a feudal lord in the coming times intends to subjugate and revolt against a king citing the same situations and causes - that Tang-Wu faced - as the justifiable reason, then he will practice the way of Tang-Wu." As such, he proclaimed that the revolutionary legitimacy of the Confucian sage-kings should be inherited and practiced in the reality of recent times. History does not see that coincidence and inevitability are two different things. The following year, Choe Je-u emerged and launched Donghak, which Choe Si-hyeong inherited, eventually leading to the outbreak of Donghak Peasant War in 1894. In light of this historical fact, Sim Dae-yun's discussion of the Theory of Tang-Wu Revolution, mentioned in the Corrective Commentary on Cai Shen, is simply not an ideal of a non-mainstream scholar in Joseon in the middle of the 19th century, but instead it opened the possibility of that theory being realized in the far future beyond the 21st century; given this, the implication of his political thoughts is hugely significant.

한국어

심대윤(1806〜1872)의 『서경채전변정』은 저자 나이 54세(1859, 己未)에 지은 것이다. 이 해는 최제우(1824〜1864)가 1860년에 東學을 唱導하기 바로 直前의 시기에 해당한 다. 『채전변정』가운데, 특히 <湯誓>·<中虺之誥>·<武成>편에서 펼치고 있는 즉, 채침 의 ‘탕·무 방벌’론에 대한 심대윤의 변정 양상에는 그의 天民의식에 기초한 정치사상적 혁명론이 예사롭지 않게 전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심대윤은 변정에 앞서 이의 기초 사상격인 ‘實學的 人性論’에서는 ‘與人同利’의 公利 論만이 도덕적 義로서의 實學에 귀결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고, ‘大同的 王道論’에서는 大衆 卽 人民들을 정치적 동반자로 포용하여 함께 화합해 가는 즉 ‘與衆同行’론을 주창 하였다. 이에 기초한 채침의 ‘탕·무 방벌’론에 대한 심대윤의 변정에서는, 1) 堯·舜·禹의 禪 讓과 湯·武의 방벌은 그 大義적 입장에서 보면 같은 것으로, 탕왕의 방벌은 天命과 天 理를 따른 것으로 한 터럭의 人欲의 私意가 개입되지 않은 즉 公利의 원칙에 따른 것이 다. 2) 채침이 형식적인 문장의 내용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탕·무의 거사를 폭력적 인 것으로 치부하는 그와 같은 편향된 시각에 대해, 심대윤은 형식적인 문장은 빈껍데기 로서 성왕의 虛利에 속하기 때문에 버려야 하며, 탕왕과 무왕이 당시 大義에 기초한 방벌 을 통해 혁명을 수행했기 때문에 일의 알맹이 즉 實利를 획득하여 천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3) 채침은 무왕이 臣下의 신분으로서 천자인 殷의 紂王을 정벌한 것으로 해석하 며 무왕의 탈법적 왕위 찬탈을 합리화 시키는 문제에 대해, 심대윤은 하늘의 福善禍淫의 道는 善惡의 如何에 따라 환히 드러나는 것으로, 천명이 끊어지고 백성을 虐待하였으니, 紂는 필연적으로 亡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고, 무왕이 스스로 ‘以臣伐君’의 죄를 실행한 것은 아니라고 변호한다. 위와 같은 심대윤 혁명론의 전개는 명말 청초 맹자의 혁명사상을 부활시켜 군주 전제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을 가했던 黃宗羲(1610∼1695)와 통치자가 民을 잘 다스리는 정치를 하지 못하여 민의 怨望을 사게 된다면, 그와 같은 통치자는 제후들에 의한 옹립으로서의 후대와 帝命에 의해 다시 變置되어야 함을 주장했던 조선 후기 丁若鏞(1762〜1836)의 정치사상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심대윤은 『채전변정』에서 “지금 후대의 제후로서 만약 왕을 정벌할 자가 탕·무의 시대적 상황과 명분에 견주어 이를 법 삼아 혁명을 일으킨다면, 이 또한 탕·무의 道를 실천 한 것이다.”고 선창하고 있다. 요컨대 심대윤은 당시 19세기 중반에 즈음하여, 과거 맹자 의 탕·무 방벌론을 현실의 실천적 유가 혁명론으로 승화 시킬 것으로 제안하고 있는 것 이다. 역사란 우연과 필연이 둘이 아니다. 역시 『채전변정』이 저술 된 다음 해인 1860년에 최 제우는 東學을 창시하게 되고, 이의 정신을 계승한 최시형은 마침내 1894년에 동학 농민 전쟁으로 이어가게 된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 비추어 보면, 심대윤의 혁명론은 당시 19세 기 중반 조선국의 한 在野 學者의 단순한 이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21세기 현시점을 관통하여 먼 미래의 언젠가에 그 실현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는 것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정치 사상적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목차

한글요약문
 1. 서론
 2. 심대윤의 인성론과 왕도론
  1) 실학적 인성론 : ‘與衆同利’론
  2) ‘大同’적 왕도론 : ‘與衆同行’론
 3. 『서집전』 ‘탕·무 방벌’론에 대한 심대윤의 변정 의미
  1) ‘禪讓과 放伐은 다르지 않다.’
  2) ‘義理는 實利이고, 文章은 虛利이다.’
  3) ‘탕·무의 혁명은 君臣의 大義를 밝힌 것이다.’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장병한 Jang-Beoung Han. 영산대학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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