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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李昀(景宗)의 세자 책봉 奏請 문제에 관한 일고찰

원문정보

A Glimpse of Submitting and Requesting Conferring Title of Crown Prince on Liyun(Gyeongjong) in Later of Chosun Dynasty

조선 후기 이윤(경종)의 세자 책봉 주청 문제에 관한 일고찰

李善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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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at Chosun Dynasty pleaded Qing Dynasty for conferring Crown Prince is important part of tributary ritual between the two countries. Whether they were conferred or not had an important influence on the trend of the political situation of Chosun Dynasty. Chosun’s memorials to the emperors, would go to the Emperors of Qing Dynasty only after the Ministry of Rites of Qing dynasty discussed and replied. Thus, the Ministry of Rite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ackling Chosun’s pleading. Conferring of Gyeongjong, which was resolved by Chosun office by means of “bribery”, was once refuted or rejected by the Ministry of Rites. This phenomenon, contrary to the gracious policy on Chosun Dynasty since the middle of Emperor Kangxi, nor was it the Emperor’s intention, objectively caused Chosun’s disdain for the administration of Qing officials.

한국어

조선 후기 세자 책봉의 주청 문제는 조선과 淸나라 간에 朝貢禮儀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내용이다. 책봉의 與否가 조선의 政局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조선 에서 청나라로 보낸 奏文은 반드시 淸 禮部의 議覆을 통해 황제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래 서 청나라 禮部는 조선의 奏請에 관한 여러 외교사안을 교섭하는 과정에서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청나라 예부에서는 조선 왕세자 이윤(경종)의 책봉 주청을 持難하고 議駁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조선 정부에서는 “人情銀”을 사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청나라 康熙 中期부터 조선에 대한 顧恤 정책과는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나 청나라 황제의 뜻도 아니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조선은 청나라 각 衙門의 부패라는 윤리적 비판 의 입장에서 멸시감도 쌓이면서 소중화주의 논리와도 연결되고 있었다.

중국어

朝鮮後期世子冊封奏請問題, 是朝鮮與淸維持朝貢禮儀關係的重要內容。冊封與否, 對朝 鮮政局的走向有着深遠的影響。朝鮮的對淸奏文, 必須經由淸禮部議覆後轉奏皇帝, 所以淸禮 部在處理朝鮮的有關奏請諸多外交事案時, 其作用不可小視。朝鮮李昀(景宗)的王世子冊封 奏請就曾經遭到淸禮部的持難和議駁, 但朝鮮通過“人情銀”的手段解決了這一問題。這種現 象與淸康熙中期以後對朝鮮的顧恤政策相違背, 也非淸皇帝之本意, 但從客觀上造成了朝鮮對 淸相關衙門腐敗之習的不滿情緖.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의 주청에 관한 규식
 Ⅲ. 세자 李昀 책봉에 나타난 문제점
 Ⅳ. 책봉에 반영된 문제점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中文摘要
 Abstract

저자정보

  • 李善洪 이선홍. 중국 북화대학교 동아역사와 문헌연구센터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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