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Reconsidering of Shunso Hishida’s <Widow and Orphan>
초록
영어
Shunso Hishida’s graduation work
한국어
히시다 슌소의 <과부와 고아>는 작가의 동경미술대학교 졸업작품으로 히시다 슌소의 도쿄미술학교 졸업작품 <과부와 고아>는 그가 당초계획을 변경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화제를 변경한 배경에는 청일전쟁과 조형적인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일전쟁은 당시 일본 미술계와 도쿄미술학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만큼 슌소도 그 영향권 내에서 <과부와 고아>를 그렸고, 전쟁피해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그린 사실은 청일전쟁 당시 전쟁피해자에 관한 논의와도 깊은 연관을 보여준다. 그런데, 당시에 사용된 ‘고아’라는 단어의 의미를 고려하면 과부와 고아 두 사람은 모자 관계일 가능성이 크고 역사 속의 인물인 도키와 고젠과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근거는 <과부와 고아>와 유사한 장면이 『헤이지모노가타리』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헤이안시대 말기 전쟁영웅이었던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에 관해서는 덴신도 강조한 바 있고, 그에 관한 희곡을 쓴 사실도 그림 속 어린 아이가 요시쓰네일 개연성을 높여준다. <과부와 고아>의 인물들이 도키와 고젠과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일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슌소가 고유명사를 쓰지 않은 점 또한 중요한 과제다. 그것은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첫 번째 이유이자 중요한 이유로서 당시 역사화에 대해 엄격했던 시대고증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즉, 낡은 갑옷으로 여성과 어린 아이가 전쟁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켰지만, 『헤이지모노가타리』에는 등장하지 않는 모티프였기 때문에 시대고증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와 같은 딜레마 상황을 해결하기 방도로서 제목에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점은 두 번째 이유로 추정되는 도키와 고젠에 대한 인식의 문제와 함께 제목에서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를 사용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생각된다.<과부와 고아>가 그려진 배경에 대한 이해에서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메이지시대에 들어 이루어진 무사도에 대한 재조명이다. 무사도를 재조명하여 그 위상을 일본적 정신세계의 핵심으로 정립하는 과정에서 헤이안시대 말기나 가마쿠라시대 초기 무사들에 대한 재평가, 재조명이 이루어졌고,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의 경우도 그와 같은 무사들 가운데 한 명으로 충군애국을 실천한 존재로까지 부각된 사실은 이 그림이 그려진 배경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슌소의 <과부와 고아>는 청일전쟁이라는 상황적 요인에 의해 전란의 피해자인 점이 더 강조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어
菱田春草の<寡婦と孤児>は彼の東京美術学校卒業作品であり、もともとの計画からの変わった主題を取り上げた絵画作品である。当初春草は平重衡によって行われた源平合戦期の奈良焼き討ちの場面を絵画化しドラマチックなスペックタークルな画面を提示しようとしたが、何らかの理由でそれをやめ、テーマを変更し<寡婦と孤児>を卒業作品として完成し提出した。彼の卒業作品の制作時期が日清戦争期であり、当時日本の美術界や東京美術学校での動き、そして戦争被害者についての論議、などを考え会わせると、画題変更の理由には日清戦争の影響があったに違いない。それと共に、群像表現が未熟だった点も重要な理由であったと思われる。登場人物の姿や鎧、などのモチーフから見て歴史人物を取り上げたものと見える<寡婦と孤児>は、その題名が一般名詞からなっているのは春草の修業期に描いた歴史画や歴史風俗画とは異なる点であり、これまでの研究では普遍的戦争被害者を取り上げたせいとされてきた。しかし、<寡婦と孤児>の具体的内容から推測してみると、それは特定の歴史人物と関係のある可能性が非常に高く、‘孤児’は今日のように両親のない子供のみならず、父親のない子供に対しても使われた単語であることは大事な糸口になる。それらの点を考えると、<寡婦と孤児>は『平治物語』に登場する常盤御前と幼い頃の源義経から来たものと思われる。また、明治時代に入って岡倉天心が日本的精神世界として武士道を強調し源義経を徳のある武士として評価したのみならず、<ヨシツネ物語>という戯曲を書いた事実と通じる。ただ、古い鎧のように二人の置かれた状況を物語る肝心なモチーフがもともと『平治物語』には登場しない点は当時の歴史画に厳しく求められた時代考証には重大な問題点であり、それによって生じたジレンマを乗り越えるためにその題名において寡婦や孤児といった一般名詞を使ったと推測される。武士道と関係のある人物を取り上げ、天心の歴史画理念を具現しようとした春草の態度は造形表現にも現れており、日本画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意識し線を強調した人物表現を見せている。
목차
II.나라奈良방화 장면으로부터의 화제변경
III.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経와의 관련 가능성
IV. 역사화 이념 제공자로서의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
V. 시대고증의 여파
VI. 맺음말
reference
abstract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