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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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은 이유는 자유주의가 어느 한 계급이나 국민전체의 생활 철학 혹은 국가정책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 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가주도형 자본주의 발달사에 있어서 이데올 로기로서의 자유주의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자유주의를 제외하면 그 실상이 분명하지 않다. 때문에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언론인이나 연구자에 의해 자유주의자라고 여겨졌던 다섯 명, 즉 후쿠자와 유키치, 구가 미노루, 하세 가와 만지로, 바바 쓰네고, 가와이 에이지로 등의 담론을 각 사상의 독특한 발상과 표현 방법에 주의하면서 살펴보았다. 영국의 경제적 자유주의, 독일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자유주의 역시 1930년대 파시즘 대두 이전, 무력감과 성격적 애매함을 노출하고 있 다는 점에서 비슷한 추이를 보였는데 일본의 자유주의자의 행보를 살펴보 면 다음과 같다. 1.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만약 자유주의를 구습타파 · 미신타파 등 과 같은 비판정신의 발휘, 개인의 자립, 실험주의의 채용, 진취주의(서양문 화의 섭취 · 응용) 등을 포함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이해한다면, 후쿠자와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일본사회에 정착시키려고 한 제1의 자유사상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후쿠자와를 자유사상가로서 언급했던 로버트슨(J. M. Robertson)조차 자유사상을 “신권정치적 사상의 전통 등 광의의 종교 와 대결한, 사회의 진보를 촉구하는 사상”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일본에 서는 유럽에서처럼 자유사상이 신권사상=국체론과 선명한 대립축을 형성 하지는 못했다. 로버트슨이 지적하듯 후쿠자와는 종교적인 미신들(그 가장 절정이 현인신에 의한 국가통치)이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시대에 봉건제도 (구습)을 부모의 적과 같이 여기며 비판적 정신을 발휘하였으나, 자유사상에 대립하는 종교로서의 천황제를 정면에서 논의한 적은 없었다. 2. 구가 미노루(陸実) :구가는 일본의 자유주의가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특정 집단에 의한 것이라는 평가에 이견을 제기하고 일본의 독립과 진흥을 도모한 ‘일본혼을 가진 애국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메이지 민권론에서 일컫는 ‘우울민권론’, ‘쾌활민권론’, ‘번역민권론’, ‘절충민 권론’ 중에서 ‘쾌활민권론’(나카에 초민)을 자유주의의 맹아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유주의를 선호하면서도 편향적인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고 주장한다.(近時政論考) 구가는 선배 자유주의자인 후쿠자와를 ‘이상 없는 실리주의자’로 비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메이지기 자유사상가 중 에서 후쿠자와와 구가는 모두 원칙에 구속되지 않는 이른바 ‘자유로운 주 의’(Freeism)에 의거한 사상가였다. 이 두 사람은 국내의 정치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상황의 추이를 파악하고 의견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뛰어났 지만, 반면 근린 아시아와의 교제에 관해서는 국가이성이라는 원칙에서 벗 어나지 못한 사상가였다고 할 수 있다. 3. 하세가와 만지로(長谷川萬次郞): 하세가와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사 상적 중심인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정작 그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운동마 저도 실체로부터 유리된 관념적인 운동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실증적 정치 학의 입장에서 독일식 관료주의와 관념론 철학을 특히 싫어했고, 권위주의 와 특권을 경멸했다. 그는 자유의 속박, 타자로부터의 강제를 혐오한 자유 주의자였지만, 만주사변을 비롯한 급속하게 변화하는 일본사회의 분위기 아래서 무엇과 투쟁해야 하는지, 어떤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 상을 결여하고 있었던 ‘대일본제국’의 자유주의자였다. 역사적, 심리적 사실 로서 국가의 존재를 중요하게 본 그는, 식민지 존재 위에 핀 자유주의자, 침략전쟁을 비판하지 못한, 말하자면 국내소비용 자유주의자의 바탕을 드 러내고 말았다. 4. 바바 쓰네고(馬場恒吾): 바바는 군부의 대두, 만주국의 탄생, 히틀러의 탄생 등 국내외 정세가 정당정치의 존립을 뒤흔드는 시대에 의회정치론,정계인물론 등을 저술했던 인물이다. 그의 자유주의에 대해서, 아오노 스에 기치(靑野季吉)는 “인민이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옹호한다는 건전한 사상 이 일본이라는 국가를 강하게 하며 일본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회 정치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상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많 은 정치평론가들 및 연구자들은 바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몇몇 사료에서 보이는 ‘동아 신질서’를 기정사실화 하는 발언이나 한국병합에 대 한 그의 기술을 종합해보면, 식민지를 가진 일본,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 의 자유주의자들의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5. 가와이 에이지로(河合榮治郞): 가와이는 토마스 그린 類의 자유주의를 ‘제3기 자유주의’라 칭하고 이를 확산시키는데 힘썼다. 그는 고전적 자유주 의가 봉건주의에 대항하고,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이를 극복했 듯이, ‘현 단계의 자유주의’는 이미 개혁을 표방하는 마르크스주의를 극복 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한편으로 국가주의 파시즘과 대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공격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들 양쪽으로부 터 고립되었음은 물론 기존의 자유주의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 자신이 결국 사상탄압의 표적이 되고 말았는데, 이러한 ‘순교’에도 불구 하고 그의 사상은 실천적 주체의 부재, 식민지화된 민족의 긍정 등 한계가 뚜렷했으며, 이런 점에서는 다른 ‘대일본제국’의 자유주의자들과 크게 다르 지 않았다. 이상 다섯 명의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는 나름의 특징을 찾을 수 있지 만, 국가주권의 틀을 전혀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이들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국민의 영광으로 받아들여 국가이성의 전개에 편승했 다. 물론 식민지해방과 침략전쟁 반대 등의 싸움과 국내 노동자․ 농민 계 급의 정치적 자유획득과 생활옹호를 위한 싸움이 하나임을 생각하고 투쟁 했던 오야마 이쿠오(大山郁夫 1880-1955) 같은 사람도 있다. 이러한 자유 주의의 특징을 밝히고 영국과 독일의 경험과 비교해 보는 것, 또한 현재의 변모한 자유주의를 해명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목차
Ⅱ. 自由主義概観
Ⅲ. 日本の自由主義者
1.福沢諭吉(1835―1901) : 封建制度は親の仇なる自由主義者
2.陸実(1857―1907。号は羯南): 自由主義を神としない自由主義者
3.長谷川如是閑(1875―1969、本名は万次郎): ドイツ観念論嫌いの自由主義者
4.馬場恒吾(1875―1956): 口をつぐんだ自由主義者
5.河合栄治郎(1891―1944): 挟撃された自由主義者
Ⅳ. むすびにかえて
<번역 요약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