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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末年の韓国における能楽公演 : 明治四三年「国諷」能楽公演を中心に

원문정보

Noh Performances in Korea in the Later Meiji Period : The Performance Produced by "Kokufu" in Meiji

飯塚 惠理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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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1946년에 발행된 『노를 보는 사람들에게』(『能を見る人に』)에 수록된 「주요 노연기자(能楽師) - 1946년 1월 현재」라는 글에는 경성에 거주하는 노 연기자 4명의 이름이 게재되어 있어 노를 취미로 하는 일본인이 경성에도 다수 거주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본고에서는 1910년 11월 12일 国諷社 주최의 시모노세키•부산•경성 공연여행에 대해서, 주로『国諷』에 실려있는 일본측기록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1910년 공연은 현지 일본인을 관객으로 의식한 행사였다는 것과 참가한 노연기자들에게도‘한국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가보자’라는 의식이 있었다는 것, 공연수입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는 점, 참가예정이었던 기타 롯페이타(喜多 六平太)가 참가할 수 없게 되어 표의 판매가 예정보다 적어 상당한 적자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전 한국에서의 노공연은 현지 한국인들에게 노를 보급하는 의도는 희박하였고, 일본인사회를 상대로 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앞으로 노를 포함하여 전쟁 전에 한국에서 이루어졌던 예능공연에 대해서 조사를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

일본어

昭和21年発行の『能を見る人に』所収の「主なる能楽師―昭和21年五月現在―」には、京城在住の能楽師が四名載っており、能を趣味とする日本人が、京城にも多数居住していたと考えられる。本稿では、明治四十三年十一月・十二月の「国諷」社主催の下関・釜山・京城の公演旅行について、主に「国諷」に載る日本側の記録から分析した。そして、この公演が、現地の「日本人」を観客として意識した催しであること、参加した能楽師にも「よい機会だから韓国を見に行こう」という意識があり、公演旅行での収入をそれほど期待していない、喜多六平太が参加する予定だったが、参加出来なくなり、そのことによって、切符の売れ行きが当初見込みより少なくなり、かなりの赤字を計上した、というようなことがわかってきた。戦前の韓国での能楽公演は、現地の韓国の人々に能を普及すると言う意図は希薄で、「日本人社会」を相手にしていると考えられるが、今後、能楽以外のジャンルを含め、戦前の韓国での芸能公演の実態について調査を積み重ねたい。

목차

요약
 はじめに
 一. 韓国の日本人の人口と職業情成
 二. 明治三十八年五月 - 『京釜鉄道開業式余興能楽』
 三. 韓國から満州にかけての能楽事情
 四. 明治四十三年十二月『国領j主催の
 まとめ
 要旨

저자정보

  • 飯塚 惠理人 Iizuka, Erito. 창山女學園大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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