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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의 국내적 활용과 ‘7ㆍ4남북공동성명’의 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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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Application of the South-North Talks and Derivation the 7.4 Joint Communique

남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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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analyses the correlation between the détente of U.S and China in early 1970s and draw of the 7.4 Joint Communique. In early 1970s, the process of foreign policy changes such as the '8・15 Declaration' and 'the 7.4 Joint Communique' was adjustment to the new international environment caused by détente. Especially, 'the 7.4 Joint Communique' affected by domestic politics more than the détente of U.S and China international politics. In consideration of the South-North talks, President Park Jung Hee more interested in its internal effects such as the Yushin regime. On the other hand, Kim Il Sung more focused on its external effects like the draw off U.S's influence in the Korean Peninsula. Therefore, President Park's position in détente was defensive, whereas Kim Il Sung's position in détente was offensive.

한국어

1970년대 초 미・중화해로 조성된 동북아의 데탕트는 남북대화의 시작과 ‘7・4남북공동성명’의 도출을가져왔다. 박정희의 ‘8・15선언’으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대외정책 변화와 남북대화의 진행 및 ‘7・4남북공동성명’의 도출은 역시 데탕트 분위기에 따른 미국의 대한정책 변화에 대한 박정희의 대응적 성격이 강한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초 동북아에서의 데탕트는 이전의 냉전 시기동안 미국에 편승하는 것 외에는어떤 대안도 갖지 못했던 한국 안보와 외교의 변화를 강제하는 대외환경의 발생이었다. 이에 대한 대응의하나로 나왔던 ‘7・4남북공동성명’의 도출에는 박정희의 국내정치적 대응과 활용의 목적이 더 컸던 것으로보인다. 그런 점에서 ‘7・4남북공동성명’은 박정희에게 있어서는 국내적 요인이, 김일성에게 있어서는 대외적 요인이 더 크게 고려되어 이루어진 남북 간 합의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초 데탕트 분위기와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는 남한보다는 북한에게 유리한 대외환경을 조성시켰다. 따라서 국제환경의 변화에 의해촉진된 남북대화도 북한이 적극적, 공세적 입장이었다면 남한은 자주국방의 모색이라는 수세적 입장에서남북대화를 통한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 보다는 그것의 국내정치적 활용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목차

요약
 Abstract
 Ⅰ. 미・중 관계개선과 동북아국제질서의 변화
 Ⅱ. 주한미군철수를 둘러싼 한미갈등과 박정희의 자주안보 모색
 Ⅲ. 남북대화의 시작과 ‘7・4남북공동성명’의 도출
 Ⅳ. 유신체제의 성립과 북한의 대화공세
 Ⅴ. ‘7・4남북공동성명’ 국면의 조기 종료와 남북관계의 후퇴
 참고문헌

저자정보

  • 남광규 Kwang-kyu Nam.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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