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case of private printing and distributing of calendar, what we called, was collected in Simrirok and it was composed of contents that Lee Ttong-i as a craftsman led the private publishing of calendar and fake seal. Inspite of several requests by loyal retainer, Jeongjo(正祖) spared his life, for the reason it occurred before setting up the another exclusive sale system and for the circumstantial evidence. Understanding about the calendar publication system of the period of 18 century in Choseon dynasty, the case of Lee Tong-i has some doubtful points. Kwansanggam monopolize the business of the calendar publication through the nationwide and pay the money like costs of pulication and personnel expenses. The people who were against the law should be punished with beheading based on the law about fake seal. A number of records of Uigwe(의궤) reveal the facts that Lee Ttong-i was a old and talented craftsman, also Jeon Chi-hak had a experienced engraver at Kyoseogwan(校書館). Taking consideration of the facts that petty official sold the calendar to the people, the printed calendar books were too dirty to read because they were imprinted too much. Eventually, it is obvious that customary events was changed to criminal case and old and sick craftsmen probably were falsely accused.
한국어
정조 말기에 편찬된 심리록에는 관상감의 자격장 이똥이가 주도한 사각역서 발매 및 인신위조 사건인 ‘이똥이옥’, 일명 ‘사각역서발매사건’이 수록되어 있다. 형률에 따라 참형에 처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거듭된 주청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책력도고를 설치하기 전에 발생한 사건이고, 각수가 인신을 위조했을 것이라는 정황근거를 들어 이똥이를 살려준다. 당시 책력발행제도를 고려하면 ‘사각역서발매사건’은 발생자체가 의심스러운 사건이다. 책력발행은 관상감의 독점사업이었고, 그 판매수익으로 이듬해 책력발행비용과 관상감 소속 인원의 인건비를 충당했다. 책력을 사사로이 간행하거나 관인이 찍히지 않은 책력을 소지한 자는 위조인신률에 따라 엄중히 처벌하도록 규정이 마련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왕실의궤들을 살펴보면 이똥이는 다재다능한 기능을 지닌 장인으로 사건 당시 이미 고령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전치학은 교서관에서 활동한 사실이 있는 중견의 각수였음을 알 수 있다. 관상감의 이속들이 책력을 판매했고, 과다한 인출로 책력의 인쇄상태가 불량했다는 사실 등을 아울러 고려하면 관례적인 일이 도고설치로 인해 사건으로 비화했고, 소수 장인이 그 벌을 받은 게 아닌지 의심된다.
목차
1. 緖論
2. 私刻曆書發賣事件의 槪要와 爭點
3. 冊曆發行의 制度的 狀況
4. 李㖯伊와 全致學의 王室使役 活動
4.1 李㖯伊
4.2 全致學
5. 治罪事實
6. 結論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