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Yakuza's Defeat, Illusion of Community : Toei Chivalry Film in the 1960's
초록
영어
Yakuza film is a genre movie which had drawn highly enthusiastic responses from the young male audiences in the 1960s Japan. Yakuza film which had flourished for about 10 years from 1963 to 1972 were called ‘Chivalry film (任俠映畵)’ at that time. These radical entertainment movies made by the plan of a huge film company called Toei were successful in drawing the unconditional support from the young workers to the students and from the boys and young mention with their distinction of classes demolished and gave birth to a group of admirers represented by Yukio Mishima and provided a ferocious battlefield for those who were of elitism and antielitism in the film criticism. What part of Chivalry film (任俠映畵) appealed to workers and the students alike and led to attract Mishima, an admirer who was seemingly contradictory at the first glance? With a few exceptions, the movies, set at the time from the Meiji to the early days of Showa, portrayed the confrontations between the old yakuzas and the new ones with Virtue and Vice uniformly set up as “Lost good Japan” versus “New modernized Japan”, which reflected the most uncompromising facts of the community illusion and nostalgia of the 1960s. In other words, Chivalry film (任俠映畵) which had something which may be called the romantic refusal to modernity were closely connected with the discourse terrain of Japan in the 1960s, such as high economic growth and rapid urbanization, the hollowization (空疎化) of rural areas, and the enormous gaps between the war generation and the postwar generation.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ideological terrain of Japan in the 1960s and analyze the Chivalry film as one of the representational metaphors for the 'symbol emperor' of postwar Japan targeting the Chivalry film which was a kind of battlefield for the left-wing youngman and rightwing one who had been through thick and thin together(同樂).
한국어
야쿠자 영화는 1960년대 일본의 젊은 남성관객들로부터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장르영화이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약 10년간 성행했던 이 영화들은 당시 ‘임협영화(任俠映畵)’라고 불리웠다. 도에이라는 거대 영화회사의 기획물로서 만들어진 이 철저한 오락영화들은 노동자부터 학생까지 계급을 막론한 소년과 청년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으며, 미시마 유키오로 대표되는 일군의 찬미자들을 낳았을 뿐 아니라, 영화비평에 있어서 엘리트주의와 반엘리트주의의 격전장이 되었다. 대체 임협영화의 무엇이 노동자와 학생을 막론한 청년들로 하여금 그들의 심정을 의탁하게 하였으며, 그리고 미시마라는 일견 상반되어 보이는 찬미자를 만들어내었는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개가 메이지부터 쇼와 초기까지를 배경으로 구 야쿠자와 신흥 야쿠자의 대립을 그리는 이 영화들은 한결같이 선과 악을 “잃어버린 예전의 좋은 일본” 대 “근대화한 새로운 일본”으로 설정하면서 1960년대의 공동체 환상과 노스탤지어의 심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하였다. 즉, 명백히 근대에 대한 낭만적 거부라고 할 만한 것이 개입되어 있는 임협영화는 고도경제성장과 급격한 도시화, 농촌의 공소화(空疎化),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라는 1960년대 일본의 담론 지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본 논문은 좌익과 우익 청년이 함께 동락(同樂)하며 하나의 장에서 격투했던 임협영화를 대상으로, 패전-전후 부흥 일본의 성격 규정, 야쿠자 영화와 전후 상징 천황제 사이의 표상적 연계까지를 해명하고자 한다.
목차
2. 1960년대 도에이, ‘불량성 감도영화’ 선언
3. 임협영화라는 가구(假構)의 세계- 있었던, 있어야 할 공동체로서의 과거
4. 전중파의 정념-패전을 보존하기
5. 임협영화의 임계점좌우 동락(同樂), 좌우 격전의 장과그 끝
6. 전후 부흥이라는 ‘악사(惡事)’
참고문헌
References
要旨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