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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공근의 생애와 항일독립운동

원문정보

Ahn Gong-geun’s anti-Japanese independent movement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오영섭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35집 2015.12 pp.219-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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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Ahn Gong-geun was the youngest brother of Ahn Jung-geun who killed Itou Hirobumi, main culprit of invasion of Korea and was hero in Korean modern history. As Ahn Gong-geun was Ahn Jung-Geun’s brother, he lived his life with honor and hardship after Ahn Jung-Geun’s patriotic deed. In other words, he basked in Ahn Jung-Geun’s glory after this deed while he was placed under strict surveillance of Japan. In 1910’s, Ahn Gong-geun was active with his second eldest brother, Ahn Jeong-geun. He visited the elder brother at Lushun Prison, lived in Muling with his and his eldest brother’s family. He punished Kim Jeong-kuk, a secret agent of Japan, and succeed in rica farming with his second eldest brother in Nicolisk, and through developing farm sought to pioneer the base of independent movement. All of these doing were came into action with his second eldest brother. Ahn Gong-geun was active in various independent group in 1920’s. In first half of 1920’s, he worked in Soviet Union as a diplomatic courier to raise funds for independence. In second half of 1920’s, he associated with anarchists and organized an anarchist group. And he joined in group for unified movement to achieve union of fighter for independence, and organized a secret society for assassination of key figures. In 1930’s, Ahn Gong-geun fulfilled the special service. He managed the Korean Patriots Corps of Kim Ku, and took the lead in patriotic struggles such as heroic deed of Lee Bong-chang and Yoon Bong-gil. He effectively managed and operated the organization of Kim Ku as a his closet advisor. He carried out his special duties in Korean Special Group of Luoyang Military Academy which was established by Chiang Kai-shek’s support, and Korean Counter Untellifance Corps for Independence, Kim Ku’s private group, and Training Center for Student. Ahn Gong-geun’s independent movement was characterized by his special duties. He had killed a secret agent of Japan with his brother when he was 20’s. When he was thirty years, he bought and hidden weapons that provided to squadders in Nicolisk. In early time of 40s, he tied together heroic deeds of Lee Bong-chang and Yoon Bong-gil. One of them, the heroic deeds of Yoon Bong-Gil has meaning of deverting the course of Korean independent movement that had worthy of Ahn Jung-Geun’s deed.

한국어

안공근은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한국근대사의 영웅 안중근의 막내 동생이다. 그는 일본 근대의 영웅을 사살한 안중근의 동생이었기 때문에 안중근의거 후 영광과 시련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안중근의거 후 형의 후광을 등에 업고 모든 한국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반면 일제의 혹독한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1910년대에 안공근은 둘째형 안정근과 함께 활동하였다. 여순감옥에서 큰형을 면회한 일, 형들의 가족과 자기 가족을 이끌고 목릉에서 생활하는 일, 모스크바 유학에서 돌아와 니콜리스크에서 장사하던 일, 일제밀정 김정국을 처단한 일, 니콜리스크에서 작은 형과 함께 벼농사에 성공한 일, 농장 개척을 통해 독립운동 기지를 개척해 보려던 일 등등, 안공근이 1910년대에 벌인 수많은 일들은 둘째형과 함께 이룩한 것이었다. 1920년대에 안공근은 여러 독립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대 전반기에 그는 상해 임시정부의 외교특사로서 독립자금을 얻어내기 위해 소련에 파견되어 활동했다. 1920년대 후반기에 그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즉, 무정부주의자들과 교유하며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했고, 독립운동자들의 전민족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독립운동촉성회와 유일당운동에 가담했고, 요인암살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인 팔인단을 조직하였다. 1930년대에 안공근은 특무활동을 정력적으로 펼쳤다. 김구의 한인애국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이봉창의거ㆍ윤봉길의거ㆍ서간단사건 등의 의열투쟁을 주도했다. 또한 윤봉길의거 후에 김구의 최측근으로 부상하여 김구가 관장하는 모든 조직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였다. 김구가 장개석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낙양군관학교의 한인특별반, 한인특별반의 후신이자 김구의 사조직인 한국특무대독립군, 고급사관 양성 예비학교인 학생훈련소 등에서의 특무활동을 통해 다수의 청년학생들에게 민족교육과 특무활동을 가르쳤다. 자기의 형들이 안창호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반면 안공근은 안창호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안중근의 의병활동이나 의열투쟁은 안창호가 속한 서북학회나 신민회의 민족운동과 일정한 연관이 있었다. 안정근은 안창호를 형님으로 극진히 모시며 상해 임정의 제반사를 상의하는 사이였다. 이에 반해 안공근은 안창호의 천거로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활동했지만, 안창호의 기대를 저버리고 흥사단에 가입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1920년대 후반에 기호파나 중간파로 분류되며 안창호의 서북파와 대립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1930년대에 안공근은 김구와 긴밀한 사이였다. 그는 정보력ㆍ어학력ㆍ의열인맥 등에서 김구에게 유익한 인물이었다. 김구가 임시정부와 중국정부의 재정지원으로 특무활동을 전개할 때 안공근은 언제나 김구를 최측근에서 보좌하였다. 그러나 양인의 밀착관계는 휘하 동지들로부터 김구가‘전재독제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안공근이 ‘전횡불륜’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안공근이 범한 재정남용 문제를 김구가 추궁하면서 양자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안공근의 독립운동을 특징짓는 것은 특무공작이다. 그는 20대 중반에 둘째형을 도와 일제밀정을 처단한 경험이 있었다. 30살 때에 노령 니콜리스크 일대에서 결사대원들에게 제공할 무기를 구입하여 산속에 숨겨놓기도 하였다. 40대 초반에 안공근은 김구와 함께 이봉창의거와 윤봉길의거를 엮어냈다. 이중 윤봉길의거는 한국독립운동의 흐름을 뒤바꾼 사건으로서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의거에 버금갈 만한 의의를 지닌 사건이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구국계몽운동 참여와 큰형 안중근의 옥바라지
 Ⅲ. 러시아 연해주에서의 생활과 독립운동의 모색
 Ⅳ. 비밀결사 활동과 독립단체 가담활동
 Ⅴ. 특무공작단 운영과 독립군 양성 활동
 Ⅵ. 김구와의 갈등과 말년의 모습
 Ⅶ.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오영섭 Oh, Young Seob. 연세대학교 학예연구관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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