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A study of the method for writing the repertory of Changguek and Kim yongseung’s activities as a representative playwright in Choseon folk music theater
초록
영어
In 1937, Choseon folk music theater was needed for a full-scale repertory Changguek. In 1936 Choseon folk music theater was performing the Changguek, sourced basis in the Pansori performing art, but in 1937~1938 Choseon folk music theater has focused on creative repertoire. This change was a chance to raise phase of Kim yongseung as the exclusive playwright in Choseon folk music theater. When Jeong jeongryeol died, the playwright for writing the repertory Changguek reduced in Chosun folk music theater, and Baksaengnam as a new playwright was accentuated happened. This paper summarizes the research of the methods for writing performance scenario in Choseon folk music theater, and investigates Kim yongseung’s activities as a representative playwright.
한국어
1937년에 접어들면서, 조선성악연구회는 본격적으로 창극 대본(공연 대본)을 필 요로 하게 되었다. 1936년에 조선성악연구회가 전래의 판소리 공연을 바탕으로 창 극 공연을 모험적으로 시행했다면, 1937~1938년에 이르는 기간에는 주로 새로운 레퍼토리의 창작과 공연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성악연구회의 전속작가로서 김용승의 위상을 제고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1938년 정정렬이 사망 하자,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창극 대본을 구성할 수 있는 인물이 줄어들게 되었고, 박 생남이라는 새로운 대본 작가가 주도되는 공연이 시행되기도 했다. 박생남의 등장 에도 불구하고 조선성악연구회의 김용승은 창극 대본의 산출을 위해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원작의 발굴과 이에 충실한 각색, 음악적 역량을 고려한 대본 작업, 계속되는 재공연을 통한 최적의 대본 창조 등이 이러한 모색에 해당한다. 창극 공연 을 거듭하면서 조선성악연구회는 창극 정립 과정에서 창극 대본의 가치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전승 판소리의 각색뿐만 아니라 고소설의 각색, 나아가서는 창작 희곡의 산출은 이러한 방안 에 해당한다. 또한 전속작가 김용승의 계속적인 기용은 이러한 방안을 찾는 도정이 라고 할 것이다. 이 연구는 조선성악연구회가 추구했던 대본 산출 방식을 정리하고, 대표적인 극작가 김용승의 활동을 관련하여 논구한 결과물에 해당한다.
목차
Ⅰ. 문제제기
Ⅱ. 1937년 공연 양상과 김용승-정정렬의 창작 조합
Ⅲ. 1938년 조선성악연구회의 공연과 그 변화 양상
1. 1938년 상반기 신작 공연 조명
2. 새로운 대본작가의 등장과 그 변모 양상
Ⅳ. 조선성악연구회의 대본 구성 방향과 대본 작가 김용승
Ⅴ. 조선성악연구회의 시기 별 대본 구성과 작품 공급 방식의 변화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