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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정몽주에 대한 조선왕조의 도덕적 역설

원문정보

A Study on the Moral Paradoxes of the Joseon Dynasty about Jeong Mong-Ju of the Koryo Dynasty

조남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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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n the late 14th century, general Lee Seong-gye(李成桂) destroyed the Goryeo Dynasty. And in the process, his son(Lee Bang-Won, 李芳遠) killed Jeong Mong-Ju(鄭夢周, 1337∼1392)who was a prime minister of the Goryeo Dynasty. About eight years later from that time, Lee Bang-Won became monarch(King Tae Jong) in three units of the Joseon Lee-Dynasty. Nevertheless, Kwon Geun(權近) said that the death of Jeong Mong-Ju was a case of the revolutionary process should but praised his patriotism. And, King Tae Jong accepted the proposal after long consideration. But it was a paradox in the point of his past actions. Looming in such a paradox was any meaning? About this question, I noticed the following fact. ① National patriotism was needed in the bureaucrats for political development, ② Embrace the potential opponents to create political stability of atmosphere was reached, ③ To build a better relationship between politics and discipline. Thus since King Tae Jong of the royal court often held worship of Jeong Mong-Ju as a model of bureaucracy. And he so highly regarded study as certificates of the Joseon Dynasty scholars. Because at the time his academic and abilities were so excellent. As described above, even if Jeong Mong-Ju had killed, but his true potential was utilized for development of political cultures of the Joseon Dynasty.

한국어

인생에서 어떠한 적대관계가 형성되면 상대를 포용하거나 화해 관계로 전환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거기에는 기존의 자기의식을 약화시켜야 할 부담은 물론 자칫 과거를 부정해야 할 위험성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덕성 제고의 국가 건설을 향한 혁명노선에서 파생하는 적대관계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14세기 말 고려왕조를 멸망시키고 조선의 이씨왕조를 개창하는 과정에서는 그와 반하는 특이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즉 고려 혁명의 수장 이성계가 점차 세력이 확장되자 그의 5남 이방원은 고려 국가의 핵심 보루인 문하시중 정몽주를 앞장서서 제거하였으면서도 그가 곧 왕으로 등극해서는 그를 오히려 충신으로 평가하여 추증하는 등의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군신들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애국 충절의 이상형을 그에게서 찾아갔고 또 유학계에서는 도통 학맥의 연원을 그로부터 설정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혁명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 인물 정몽주를 격살하면서 그 이유를 국가에 대한 불충으로 정리한 사실에 유의해 보면, 그와 같은 형태는 역설의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어제의 정적을 오늘의 정치문화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가는 형국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설 속에서는 충의의 가치를 드높이는 도덕정신이 살아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당시의 사료를 근거로 이상과 관련한 실제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그 내면에 흐르는 도덕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다. 이 고찰에서 특히 주목된 부분은 그 역설의 문을 열어가고자 논리적 위험성을 해소시키며 그러한 변화를 유도했던 큰 유학자 권근의 제의, 신생 왕조국가의 미래를 고민한 엄군 태종의 결심에 담긴 가치 지향이었다. 만일 이 두 사람의 도덕적 역설의식이 없었더라면 정몽주 모델의 충절과 의리정신, 그리고 조선조 도통의 맥락은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태종 이후 조선조 초기의 정계와 학계가 함께한 그 역설 속에 내재한 도덕적 의미는 다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① 새로운 이씨왕조의 영속과 보편적 가치관 정립을 위해 애국 충성을 제일 가치로 공유하면서 그 실현을 극대화 하고자 했다는 점, ② 혁명노선에 반대하던 잠재세력들에게까지 현실 참여에의 도덕적 감동을 일으켜 기존의 경직된 정치사회 분위기를 완화해 가게 했다는 점, ③ 정몽주 충절 표창의 관점은 왕조시대의 선왕 승계의식에 따라 태종 이후에도 공직 기강확립의 에너지로 삼으며 의리 중시의 학풍을 일으키게 했다는 점 등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고려 정몽주의 정치활동과 피살
 Ⅲ. 정몽주에 대한 조선왕조 도덕적 역설의 실제
  1. 권근의 정몽주 표창 건의와 태종의 수용
  2. 세종과 후왕들의 정몽주 충절 제고의식
 Ⅳ. 역설 맥락에 내재된 도덕적 의미
  1. 애국 충성의 강조
  2. 조선조 유교 도통의 연원 정립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조남욱 Cho, Nam-Uk. 부산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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