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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亭種彦の考証随筆と合巻 - 古俳諧の利用をめぐって -

원문정보

Ryutei Tanehiko's Essay based on Research and Gōkan - Concerning Using the Haikai of the early Edo period -

류테이 다네히코(柳亭種彦)의 고중수필과 고칸(合巻) - 근세 초기 하이카이(俳諧)의 이요에 대해서

金美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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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Ryutei Tanehiko Eas a writer of the latter part of Edo period, and he had left a lot of essays based on his research. Tanehiko took customs, Kabuki, Haikai in the early Edo period as an object of his research. Santou Kyoden and Kyokutei Bakin, Tanehiko's contemporary writers, were also concerned for these researches. However, we can find out Tanehiko's research was reflected in the knowledge of Haikai of the early Edo period. If we compare Kyoden and Bakin with Tanehiko, Tanehiko used Haikai in Haisyo, whereas Kyoden and Bakin did not. And Tanehiko noted explanation on quoted phrase. When Using Haikai, Tanehiko analyzed the handwriting of a printing block of Haisyo. This had become possible because Tanehiko researched Haikai many years. These kind of Knowledge were used as writing Gōkan. In this paper I present verification that Tanehiko used Haikai of the early Edo period in his Gōkan "Musumekinpiramukashiezoushi". The essay based on Tanehiko's research has many results of his knowledge of Haikai.

한국어

류테이 다네히코는 근세 후기에 활약한 작가로 요미혼(読本)과 고칸을 집필하면서 다수의 고증수필도 남겼다. 다네히코는 근세 초기의 풍속, 가부키(歌舞伎), 하이카이 등을 고증의 대상으로 삼았다. 산토 교덴(山東京伝)과 교쿠테이 바킨(曲亭馬琴)과 같은 동시대 작가들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다네히코의 고증과 교덴, 바킨의 고증을 비교해 보면, 다네히코의 고증은 근세 초기의 하이카이에 대한 지식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네히코는 교덴의 고증을 재고증할 때, 새롭게 인용하는 자료의 대부분이 근세 초기의 하이카이였고 반드시 구(句)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다. 또한 바킨이 중국의 한적(漢籍)을 자료로서 이용하여 고증하는 것에 반해, 다네히코는 근세 초기의 자료를 이용하여 고증하고 나아가 하이카이 서적의 판목의 필적까지 분석했다. 이러한 근세 초기의 하이카이에 대한 다네히코의 지식은 고칸『무스메긴피라무카시에조시(娘金平昔絵双紙)』의 창작에도 이용되었다. 다네히코는 근세 초기의 하이진(俳人)인 다다토모(忠知)의 구(句)「白炭や」가 이와 거의 비슷한 다네토모(種友)의 구(句)「白炭は」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창작에 이용하였다. 게다가 본문에는 다다토모의 다른 구도 인용하여 다네히코는 자신의 고증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학문적인 성격을 지닌 고증수필과 오락적인 성격을 지닌 고칸은 서로 상반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나, 두 장르 모두에서 다네히코의 근세 초기 하이카이에 대한 지식을 엿볼 수 있다. 다네히코는 희작자(戯作者)로서 활약하기 이전부터 근세 초기 하이카이에 관심이 있었으며 이것이 나중의 집필 활동에서 충분히 활용되었던 것이다.

일본어

柳亭種彦は、文化・文政・天保期(1804-1843)に活躍した戯作者で、読本や合巻を執筆するかたわら、考証随筆も多数書き残している。種彦は、自ら活躍した時期から百年以上も前の歌舞伎や俳諧などを考証の対象としていた。 近世初期の物事を考証するのは、同時代の戯作者である山東京伝や曲亭馬琴にも確認できる傾向ではあった。しかし、種彦の考証と、京伝や馬琴の考証をそれぞれ比較してみると、種彦の考証は古俳諧に対する幅広い知識が基にな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例えば、種彦が京伝の考証に補足するなどの再考証を施す際、その資料の殆どが古俳諧で、必ず解説をも添えていることが確認できる。また、馬琴が中国の漢籍を資料として用いて考証するのに対し、種彦は、近世初期の資料を用いて考証をし、さらに古俳諧の俳書の版下の筆蹟まで分析していた。 こうした古俳諧に対する種彦の知識は、合巻『娘金平昔絵草紙』の創作にも活用されている。種彦は、近世初期の俳人、忠知の「白炭や」の句が、この句と等類の関係にある、種友の「白炭は」の句より先に詠まれたのであると考え、これを作品に取り入れている。さらに本文に、忠知の他の句も引用し、種彦は自らの考証趣味を示している。 学問的な考証随筆と娯楽的な合巻はそれぞれ異なる性質を持っ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その中から種彦の古俳諧に対する知識を読み取ることができる。種彦は戯作者として活躍する以前から古俳諧に関心があり、それが後の執筆活動で充分に活かされたのである。

목차

<要旨>
 I. はじめに
 II. 種彦の考證の特徵 - 古俳諸の資料の利用
 III.『娘金平昔給草紙」の創作と古俳諸
 IV. おわりに
 參考文獻
 <要旨>

저자정보

  • 金美眞 김미진. 東京大學大學院人文社會系硏究科 博士課程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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