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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후 한성부 북부 6방(坊)(현 북촌)의 주거 정체적(停滯的) 구조

원문정보

Unchanged Residential Area System in Bukchon(北村), Seoul since the 18th century

정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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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Bukchon, Seoul is area enclosed by a mountain range and to the North is high and to the South is low. The inside is made up of the five lower valleys and every valley streams flowing. The Administrative District Names of each valley were Ganghwa-bang, Yangdeok-bang, Gahoe-bang, Anguk-bang, Jingjang-bang, Gwangwang-bang from east in the Joseon Dynasty. Inside each valley, there was a naturally formed village and each village(坊) had a culture of autonomous residents. That culture of each Bang(坊) is created by the royal family and nobility who has not a financial difficulties or not required efforts to avoid citizen labor(坊役). Hanseongbu(modern Seoul) citizens organized Gye(契)-Unit on the basis of human bonds and a spatial homogeneity in oder to perform their citizen labor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But because Bukchon people was able to avoid or exempt citizen labor from social status, they did not organize Gye-Unit. As a result, there was organized into 1Bang- 1Gye by administrative districts without experiencing conflict divided into several Gye-Units. Bukchon could be maintained as a non-commercial residential areas like early Joseon Dynasty thanks to the system of 1valley-1Bang(village)-1Gye. Due to this, the culture of Bukchon became increasingly exert great force and it functioned as a power for holding the social status of residents. Since the 18th century, though Hanseogbu was turned commercial city, Bukchon was still as unchanged residential area, due to topography, location, social status construction, village culture etc.

한국어

현재 서울의 북촌은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한성부 북부에 편입되었던 곳이다. 경복·창덕궁의 주산인 백악과 응봉을 연결하는 산줄기로 감싸여 있으며 산줄기의 사면을 따라 남쪽으로 낮아지는 지형으로 볕이 잘 들어 풍수상으로 주거 吉地다. 경복·창덕 두 궁궐과 산줄기로 둘러싸인 그 내부에는 야트막한 다섯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골짜기마다 개천이 흐르고 있어 식수를 제외한 생활용수 확보가 수월하고 홍수피해가 적다. 지형, 풍수, 입지적 장점때문에 북촌은 조선전기부터 권문세가들이 선호하는 주거지였다. 본고는 대한제국기에 작성된 한성부호적의 분석을 통하여 앞서와 같은 지형· 입지적 성격을 보이고 있는 북촌 지역의 조선시대 坊경계를 복원하고, 북촌지역 거주민의 신분구성과 주거규모의 존재양상을 고찰하려 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18세기 이후 북촌의 지역적 특질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해졌는지 追認하여 밝히려 했다. 1906년 한성부호적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존재양상이 읽혔다. 1. 북촌의 각 골[洞]은 동쪽으로부터 광화방, 양덕방, 가회방, 안국방, 진장방, 관광방으로 행정구획 되었으며, 坊의 경계는 골의 가장 높은 지점을 따라 형성되었다. 2. 북촌 6개방 거주민의 신분은 양반, 중인, 평민, 상인 등 특정신분에 국한되지 않고 골고루 섞여 있으나, 거주자 중 양반 비율이 평균 56%로 가장 높아 ‘양반촌’이라는 별칭이 단순히 권문세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3. 북촌 6개방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가옥의 규모는 6~10칸 사이며, 기와집은 전체 가옥면적의 49%를 차지한다. 양반 중 기와집을 소유한 호는 전체호수의 17%로 양반의 1/3정도에 해당하지만 그들이 소유한 와가의 규모는 6개방 전체가옥의 39%를 점유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는 와가를 소유한 양반의 정치·경제력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력을 기반으로 기와집을 소유한 또 다른 신분은 왕족과 평민 중 장사를 주업으로 하는 商民, 시전 조직에 가입되어 있는 市民이다. 정치·경제력을 가진 왕족과 사대부들의 大家로 이루어진 북촌은 이들에 의해 형성된 洞문화가 존재했는데, 이는 경제적 어려움·免役 또는 避役의 조처가 필요치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다. 17~18세기 한성부민들이 방역에 대한 응역의 단위로 인적결합 및 공간적 동질성을 담보로 하는 契를 조직하여 운영할 때에도 북촌의 지역민들은 신분을 통한 면역과 피역이 가능했다. 따라서 여러 계를 조직하여 내분화되는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되었고 18세기 말 1방-1계로 편제될 수 있었다. 하나의 골[洞]이 하나의 坊이 되고 그 坊에는 하나의 契만 있는 1방-1계의 행정편제는 북촌이 조선전기와 같은 주거지로 유지되어 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되었다. 제도적으로 인정된 洞의 문화는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으며 북촌에 전출·전입·차가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동질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암묵적·폐쇄적 질서가 되기도 했다. 조선의 수도 한성부는 17~18세기를 거치면서 점점 상업적 도시로 변모해 갔다는 것이 그간의 학설이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돈을 받고 방역을 대신하던 조직인 契가 18세기 말 공식적인 행정구역으로 편제되기 시작한 것을 들고 있다. 한성부의 모든 지역이 경제적 논리에 따르며 계를 편성하여 상업화되어 가고 있던 조선 후기, 북촌지역만 유일하게 더디게 변하고 있었다. 이는 북촌지역이 지형· 입지적 조건을 바탕으로 신분 폐쇄적 주거지역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말하면, 한성부가 상업도시로 힘있게 변화해 가는 동안에도 북촌지역만은 주거 전용구역으로 停滯되어 있었다고 할 것이다. 북촌의 주거 정체적 구조는 일제강점기 권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인과 그들의 카페, 북쪽 경사면에 대규모 필지를 구획하여 만든 도시형 한옥단지에 의해 깨지기 시작했고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이어졌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시대 한성부의 북부와 서울의 북촌
  1. 한성부 북부의 두 구역, 서울 북촌과 서촌
  2. 북촌의 입지와 미세지형
 Ⅲ. 한성부 광무호적을 통해 본 북촌의 존재양상
  1. 미세지형을 따라 형성된 坊경계
  2. 양반 중심의 거주자 신분구성
  3. 경제력에 비례하는 주거규모
 Ⅳ. 서울 북촌지역의 18세기 이후 주거 停滯的 구조
  1. 1坊 1洞 1契의 행정편제
  2. 避役 및 免役이 가능한 坊의 구조
  3. 신분폐쇄적 주거전용 구역의 유지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저자정보

  • 정정남 Chung, Jung-nam. 공학박사,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연구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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