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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大夫와 山人의 사이에서 – 張岱와 陳繼儒를 통해 본 명말 문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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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nobleman and Shanren - The life of literary man in the late Ming period through Zhang Dai and Chen JiRu

사대부와 산인의 사이에서 – 장대와 진계유를 통해 본 명말 문인의 삶

백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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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명대 후기 ‘쾌락의 혼돈’ 시대가 열리고, 당시 문인들은 명성과 영리를 좇아 다채로운 삶의 행로를 모색한다. 陳繼儒와 張岱의 삶은 이러한 명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山人의 모습 속에서도 사대부의 정체성을 놓지 않으며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고민하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명대 직후 전개된 역사적 평가가 지금 우리의 시선에 미쳤을 영향 관계에 대해 의심하면서, 명말 그리고 당시를 다시 보는 계기로서의 문제제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중국어

此文以陈继儒,张岱为中心,考察明末、清初文坛概况。两人生前曾经会晤,张岱在自己的墓碑铭中对陈继儒说过“打秋风”。有些研究关注此评价指出当时世人将陈继儒视为山人,是颇为普遍的。这固然有道理,是因为陈继儒为了营利从事出版业,而按我理解,失于偏向,就疏忽了陈继儒对当时社会的关心。 当时文人的生活方式大体分为三类,一是参与幕僚,二是开私塾或被聘为塾师,最后一个是出版。由于商业经济的繁荣与商业认识的变化,有些文人就投身于出版业,文人本身作为读书人,“卖文”或者有关作文的活动是优先选取的事业。因此,陈继儒从事出版工作也算得上平常的事。与此同时,不能疏忽的是,陈继儒不仅追求营利写小品之类的文章,而且积极发出不少针对时事的声音,例如为了解决饥饿提出时务之策,这就意味着他也并不放弃士大夫的责任。加之,自己参与地方志的编撰。这些面貌是从张岱那里更容易发现的,他亲身经历过明朝的崩溃,对司马迁的选择和责任颇有同感,自己也作为明朝的遗民有志乎叙述明朝的历史。 两人同样持有隐士之志,特别是对陶潜有仰慕之情。如考虑到当时士人为了提高自己的身价标榜为山人号称,陈、张两人的选择是不能过高评价,而不容疏忽的是,他们走上隐士之路往往坦言其苦衷,这不是表明他们对隐士之路的认真态度吗? 并且,两人皆对游侠、烈士深表爱情,对其留下不少文章。张岱又对其写过列传,陈继儒则对张岱所编定的该书写过序文。 那么,陈继儒的评价为何偏向于否定的呢?我认为清朝推行大规模的文化政策以紧密管制社会,并且坚守对明末文坛贬低的态度,因此将陈继儒看作引起负能量的中枢人物,结果深刻影响到后世对陈继儒的评价,由此只是陈继儒的山人面貌流布起来。 不过,如果我们细心考察,张岱曾经对陈继儒说过的“打秋风”绝不是批评,而是用戏谑的笔调夸说他的优雅风流。

목차

1. 머리말
 2. 明末과 行路그리고 小品
 3. 山人의 呼名과 그들의 글쓰기
 4. 隱士그리고 俠士
 5. 評價의 顚倒그리고 視線
 參考文獻
 中文提要

저자정보

  • 백광준 Baek, KwangJoon.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부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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