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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朝鮮時代 分舍利 浮屠의 建立 記錄과 樣相 그리고 造成 背景

원문정보

A study on the Stupa through distributive Sarira of priest in Korea-Chosun dynas

고려-조선시대 분사이 부도의 건립 기록과 양상 그리고 조성 배경

엄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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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thesis dealt with the procedure of Chosun buddhist priest's Stone Stupa which were built after funerals. This thesis also studies about the style and aspect of Stone Stupa distributive Sarira of priest. According to the historical records about buddhist priest's funerals, Stone Stupa had been limitedly constructed. Most of the owners of Stone Stupa were King's Teachers, the most Reverend Priest and buddhist priests who were honored King's teachers after death. They were highly respected. When they died, a King and a central government heavily supported the funeral and the construction of Stone Stupa. Also, the people of local importance and the Public supported to the building of Stone Stupa. Korean history of Stone Stupa take on a new aspect the late of Korea. In the late of Korea, new style Stone Stupa appeared. From the fourteen century, the way of funeral had been changed. In addition to new style, there was new tradition. The tradition was that Sariras were divided into many parts and sent to several temples to build Stone Stupa. It was one priest:several temples: several Stupas:several Tab-bi. This style of distributive Sarira has its origin in India. The Stone Stupa had been constructed to distributive Sarira of a leading priest. This tradition was succeeded to Chosun Dynasty. Especially, we can learn a extensive and various facts when the late of Chosun. Such things were built seems to have been caused by a combination of various backgrounds, the cognition of traditional distribution in ancient India Sarira, holy perception and thinking on the distributive Sarira, the same perception of a priest and buddha, high respect of the priest more than the early of Chosun, etc. It had beenchanged that the priest in perception and Buddhist community's recognition. Scrutiny on Stone stupa of the North Korea region should be in its territory are some things forward. Through such sources can be move forward in research on the general status, quantity, distribution chart and range, style change, character and building temples.

한국어

신라 말기 선종 사찰을 중심으로 개산조나 유력한 고승들을 중심으로 건립되기 시작한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遺骨이나 舍利를 비롯한 遺品 등을 봉안하기 위하여 만든 死後 墓塔的 造形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시대를 거쳐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韓國 浮屠史에서 新羅와 高麗時代는 定着 및 發展期 로서 일반적으로 1僧-1寺-1塔-1碑가 관행적이었는데, 고려 말기 특정 승려를 중심으로 이전의 관행이 깨지면서 1僧-多寺-多塔-多碑의 전통이 새롭게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朝鮮時代로 계승되며, 조선 후기 부도의 건립이 크게 성행하면서分舍利에 의한 數基의 浮屠가 여러 사찰에 건립된다. 조선시대 이러한 변화에 대한 分舍利 浮屠의 전반적인 현황 파악과 연구는 아직까지 미미한 상태이다. 앞으로 分舍利 浮屠에 대한 진전된 연구를 위하여 그동안 남한 지역에 대한 조사 자료를 중심으로 건립 현황과 배경 등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朝鮮時代 들어와 分舍利에 의한 부도가 본격적으로 건립된 배경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고대 인도에서 分舍利와 佛塔 해체후 舍利 분배에 의하여 불탑을 건립했던 전통을 알고 있었으며, 分舍利에 대한 신성한 인식과 분사리 신앙이 있었던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깨달은 승려는 부처와 동일선상에서 인식하였으며, 승려에 대한 예우가 높아진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들어와 유력한 승려들에 대하여 분사리에 의한 부도를건립해 주는 것은 승려에 대한 인식의 변화, 불교계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북한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부도들에 대한 정밀 현황 조사도 이루어져朝鮮時代 分舍利 浮屠에 대한 전반적인 현황이 파악된다면, 分舍利 浮屠의 수량과 분포, 分舍利 浮屠의 法脈과 그에 따른 양식의 변화, 分舍利 浮屠가 건립된 사찰과 주인공과의 관련성 등 다양한 연구가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I. 머리말
 Ⅱ. 分舍利 浮屠의 建立 記錄과 樣相
  1. 高麗時代
  2. 朝鮮 前期
  3. 朝鮮 後期
  4. 유의점과 특징
 Ⅲ. 分舍利 浮屠의 造成 背景과 特徵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엄기표 Eom, Gi Pyo. 단국대학교 교수, 평생교육원장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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