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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光에 대한 視覺的 기억의 전개와 의미

원문정보

Meaning of visual memory of Sima Guang

사마광에 대한 시각적 기억의 전개와 의미

고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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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Sima Guang司馬光(1019~1086) has been visualized for a long time in various ways on paintings Korean scholars appreciated. Sima was a renowned historian who wrote Zizhitongjian資治通鑑, a leading conservative politician at that time, one of most famous scholars who found the base of New-Confucianism, and a man of good character. Korean scholars had great regards to his thought and achievement. Breaking a Urn or Jiwengtu擊瓮圖, showing a resourceful child who saved his friend from a big urn full of water, was an well-known paining continuously produced from Goryeo to late Joseon. Garden of Solitary Enjoyment or dulewentu獨樂園圖, describing Sima’s garden recorded in detail by Sima himself, was popular after middle Joseon, reflecting scholar’s desire for owning wonderful garden. Two extant Joseon paintings of the garden-theme are similar to Ming painting by Qiu Ying 仇英(1494-1552) which was introduced to Korea according to literal document written by Joseon scholar. Lastly, figure paintings or portraits showing Sima Guang were appreciated, usually evoking a specific discourse about proper clothes for scholars out of government work. This discourse was important to Joseon scholars in the middle and late Joseon. In conclusion, visualizing Sima Guang and meaning of the images historically show what scholars of Joseon wanted to see and to show through a well-known person.

한국어

北宋의 司馬光(1019~1086)은 新法에 반대하고 舊法을 주창한 정치인 이며 『資治通鑑』, 『家範』등의 저자이다. 한반도의 문사들에게 사마광은 지혜롭고 덕이 높은 정치인으로, 禮와 正名을 중시한 유학자로, 주자학 의 기틀을 세우고 朱熹의 추앙을 받았던 성현으로, 탁월한 문장력의 문 인으로 높이 평가되었고 꾸준히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擊瓮圖’는 사마 광의 어린 시절 용기와 지략을 그린 것으로 고려로부터 조선말기까지 감상된 그림이다. 다만 현전작이 없어 조선시대 입수되었던 중국의 『新增圖像小學日記故事大全』,에 실린 삽도로 이미지를 확인하였다. 사마광의 정원을 그린 ‘獨樂園圖’는 사마광의 「獨樂園記」와 「獨樂園七詠」을 반 영한다. 조선중기 李滉의 고사인물병풍의 한 주제에서 비롯하여 金錫冑 가 본 明代仇英(1494-1552)의 <獨樂園障子>, 兪漢雋이 감상한 宋朝六 賢의 한 사람으로 독락원의 사마광이 그려졌다. 조선후기작으로 현전하 는 <독락원도>들(국립중앙박물관, 야마또분가칸)이 구영의 <독락원 도>들(클리블랜드 뮤지엄, 화정박물관)과 연관성이 높으며 이들은 화려 하고 이상적인 정원경을 주제로 한다. 사마광의 肖像은 深衣와 복건의 복식 예법을 주제로 하여 수백 년의 담론이 이루어진 것을 살펴 현재 鄭敾이 화첩류 속 사마광이 심의와 복건으로 그려지지 않은 점에서 그 진작여부나 주제파악의 재고를 제안하였다. 사마광의 이미지화는 보편 적 교육의 지속, 학문적 경향이나 예법의 문제, 물질문화의 반영 등 역 사적 특성이 반영되어 유행하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이를 통해서 역 사적 실존 인물에 대한 관심과 표현 속에는 당대의 현실적 요구에 상응 하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역사 속 인물에 대한 기억으로 정착 되었던 흥미로운 양상을 살필 수 있었다.

목차

<논문 요약>
 I. 들어가는 말
 II. 사마광에 대한, 고려와 조선의 평가
 III. 남다른 아이, ‘擊瓮圖’
 IV. 은거와 학문의 이상공간, ‘獨樂園’
 V. 예법과 원로의 풍모, 肖像과 洛陽耆英會
 VI. 나오는 말
 <참고 문헌>
 <도판 목록>
 Abstract

저자정보

  • 고연희 Kho, Youenhee. 서울대 규장각 연구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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