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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완 사행문학의 양상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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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pects and meanings of Youn Ji-Wan’s envoy travel literature

조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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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paper introduced Youn Ji-Wan’s Sahaengnok, 『Seungsarok(乘槎錄)』 which was not introduced yet and identified the meaning in the advocated poems with Japanese people. Youn Ji-Wan’s『乘槎錄』 is composed of three parts of main body․ appendix․separate record. There are total 80 poems with 62 titles and 32 poems with 31 titles are related with Japanese people and almost half of the poems are advocated poems with Japanese people and there are also the writings sent to Japanese people like 「留侯像質」ㆍ「答水戶侯源光國書」ㆍ「西京尹送紙求書仍題少序以贈」. Appendix was complied with poems and prose which were sent to Youn Ji-Wan by Japanese people and there are 32 poems and prose and 3 writings of 10 Japanese people. In the appendix, Youn Ji-Wan’s 贐章 are included which was received from 21 people before diplomatic trip. This texts are meaningful in the aspects that Japanese people arranged the poems and prose, the existence of 三使臣’s Pildamchanghwa could be identified in 1682 diplomatic trips where just the Sahaengnoks of two were left, JeongSa’s Sahaengnok were added which are composed of poems and prose in envoy travel literature researches mainly by Seol writer and new research perspective could be suggested. Youn Ji-Wan exchanged the poems and prose mostly with Buddhist monk․ Confucian scholar․Gwanban(館伴) class. Buddhist monks accompanied diplomatic trips from Tsushima to Edo and played an intermediary role between Joseon people and Japanese people. Buddhist monks accompanied diplomatic trips from Tsushima to Edo and played an intermediary role between Joseon people and Japanese people. They were positioned not to be ignored by Tongsinsa at all. In Youn Ji-Wan’s poems, there are many paragraphs to compliment about the poem and prose of Japanese people. But when he met Confucian scholars, inherent exclusion against Buddhism emerged. Changhwa with Buddhist monks had the aspect to satisfy the poem and prose demands of Japanese people for the safety and convenience during diplomatic trip. Youn Ji-Wan also used to praise the poem and prose의 capability to Confucian scholars, and he showed that he accepted poem and prose exchange with Japanese people as the place to compete the poem and prose. Finally, it was an official behavior to Gwanban and Cha`ng-he was conducted for poem and prose. He expressed the gratitude for the reception with the way of poem by representing the Tongsinsa as the JeongSa who was the highest diplomat. Youn Ji-Wan highly regarded the capability and value of poem and prose at the place of diplomacy. It is difficult to assure how much Japanese people agreed to this perception. Eventually, poem and prose exchange at pre-modern times in East Asia was the behavior to follow the behaviors which matched with their values in their individual stance and Youn Ji-Wan also maintained the exchange of Poem․Prose as the nobility at Joseon with civil administration principle and JeongSa in diplomatic trip.

한국어

본고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윤지완(尹趾完)의 사행록 「승사록(乘槎錄)」을 소 개하고 일본인과의 창수시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윤지완의 「승사록」은 본문ㆍ부록ㆍ별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에는 총 62제 80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중 31제 32수가 일본인과 관련된 시로 반 가까이가 일본인과의 창수시이며, 「유후상질(留侯像質)」ㆍ「답수호후원광국서 (答水戶侯源光國書)」ㆍ「서경윤송지구서잉제소서이증(西京尹送紙求書仍題少 序以贈)」라는 일본인에게 보내는 글도 수록되어 있다. 부록은 일본인이 윤지완에 게 보낸 시문을 엮은 것으로, 일본인 10인의 시문 32수와 문 3편이 실려 있다. 부록에는 윤지완이 사행 전 21명에게서 받았던 신장(贐章)이 수록되어 있다. 일 본인의 시문을 정리하고 있다는 점, 역관 2인의 사행록만이 남아있는 1682년 사 행에서 삼사신(三使臣)의 필담창화의 실재를 살펴볼 수 있는 텍스트라는 점, 서 얼 문사 중심의 사행 문학 연구에서 시문으로 구성된 정사의 사행록이 추가되어 새로운 연구 시각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에서 가치 있는 텍스트이다. 윤지완은 크게 승려․유자․고위 접대역 계층과 시문을 주고받았다. 승려들은 쓰시마에서 에도까지의 사행을 호행하며 조선인과 일본인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 통신사에게 이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윤지완의 시에는 일본인 의 시문에 대해 칭찬하는 구절이 다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유자들을 만났을 때에 는 내재되어 있던 불교에 대한 배척이 드러났다. 승려들과의 창화는 사행 여정 동 안의 안정과 편의를 위해 일본인의 시문 요구에 부응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윤지완은 유자들에게도 시문의 역량을 높이며 칭송하곤 했는데, 윤지완은 일본인과 의 시문 교류를 시문을 다투는 장으로써 받아들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마지 막으로 관반들에게는 공적인 행위로서 시문의 창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정사(正 使), 즉 ‘실무형 외교전문가’로서 통신사를 대표해 접대에 대한 감사를 시라는 수 단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윤지완은 외교의 장에서 시문의 역량과 가치를 중시했다. 일본인들이 이러한 인식 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었을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결국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양국 인의 시문 교류는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알맞은 행위를 좇는 행위였고, 윤지완도 문치주의 조선의 사대부로서, 사행의 정사로서 시문창화를 이어나갔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승사록」의 구성과 특징
 3. 윤지완 시문 교류의 양상과 의미
 4. 나오며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조영심 Cho, Young-sim. 연세대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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