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석굴암 千佛小塔의 봉안처 再考

원문정보

A Reconsideration on enshrinement space for the small pagoda with chunbul in Seokguram

석굴암 천불소탑의 봉안처 재고

한정호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The established theory is that the small pagoda with chunbul in Seokgulam, along with other five-story pagoda smuggled, was placed in the front and rear of the statue of the Buddha, main statue, in the main chamber. However, considering the size of the small pagoda with chunbul and the status of reliefs on the cave wall and the flat structure of the main chamber, the front and rear of the main statue is not a reasonable place to enshrine the stone pagoda. Accordingly, in this paper, on the contrary to existing theory, it was deduced that, the where the stone pagoda was enshrined was the two tabernacle chambers, an empty space left and right of the entrance to the main chamber. As evidence, it was noticed that the size and the proportion of small pagoda with chunbul was designed suitable for enshrinement. Also, it was revealed the shape of under-masonry and the location of the hole for Sari that were different from other stone pagodas was for enshrinement of tabernacle chamber. Also, two tabernacle chambers in which pagoda were enshrined had been collapsed when Seokguram was discovered. Also, it was found out that, when it was disassembled for repair in 1913, it was expanded during restoration. Therefore, it can be inferred that the prototype of two tabernacle chambers of Seokguram, which is currently empty, was a good place to enshrine pagoda.

한국어

석굴암 천불소탑은 일제강점기에 석굴암에서 밀반출된 또 다른 오중보탑과 더불어 주실 본존상의 전면과 후면에 배치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천불소탑의 규모나 석굴 벽면 부조상과의 위계 및 요잡의례를 고려하면 본존상의 전면과 후면이라는 위치는 석탑이 봉안되기에는 불합리한 위치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기존의 통설과 달리 석탑의 봉안처가 주실 입구 좌우에 비어있는 두 감실이라는 사실을 추론하였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우선 천불소탑의 규모와 비례가 감실 내 봉안에 적합하도록 제작되었 으며, 석탑을 받쳤던 대석의 형태와 사리공의 위치가 평면에 배치되는 일반 석탑과 다른 점 또한 감실 봉안을 위한 구조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석굴암 감실에서 불상이 반출되었다는 기 존의 통설은 그 근거가 되는 기록의 간행시점과 내용 분석을 통해 실체가 불분명한 기록이라 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감실에서 불상이 반출되었다는 통설은 석굴암 수리공사가 완 료된 이후 복원된 빈 감실을 두고 양산된 여러 이야기들이 확대 재생산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해체수리 이전에 이미 감실이 붕괴된 상태였음을 보여주는 제석천상 사진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당시 감실의 붕괴는 천불소탑의 파손과 반출된 오중석탑이 십일 면관음보살상 앞으로 이동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천불소탑이 복원된 감실 안에 봉안될 경우 발생하는 감실 크기와 석탑의 부조화 문제는 석굴암 수리과정에서 감실의 구조와 규모가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해소하였다. 이 과정에서 확인된 새로운 사실은 석굴암 감실 부재의 95% 이상이 해체수리를 통해 신 부재 로 대체되었고, 대체된 부재의 절반이상이 원형과는 다른 구조로 복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 졌다. 끝으로 일제강점기 해체 수리 과정에서 감실의 크기가 변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근거 자료로 수리 이후 석굴암 주실 입구에 위치한 팔각석주 구조의 변화를 주목하였다. 해체수리 이전 첨차석을 기점으로 상단과 하단이 어긋나게 배열되었던 팔각석주의 원형은 해체 수리 이후 현재의 모습처럼 상하 수직배열로 바뀌었다. 이처럼 원형과 다르게 팔각석주를 복원한 이유는 이미 붕괴되어서 원형을 알 수 없었던 두 감실을 나머지 8개 감실의 규모에 맞춰서 복원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간주된다. 따라서 해체 수리 이전의 상황이 반영된 복 원설계도면대로 팔각석주를 복원할 경우, 제 1감실과 제 10감실의 폭은 석주가 이동한 만큼 축소되어 그 너비는 최대 95cm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두 감실은 현존하는 8구의 감실 보살상과 동일한 규모의 불상을 봉안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불상이 봉안되지 않았다면 이 두 감실에 안치될 수 있는 대상은 당연히 천불소탑과 일제강 점기에 반출된 오중석탑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천불소탑과 대석
 Ⅲ. 천불소탑의 봉안처
 Ⅳ. 석굴암 감실에서 반출된 불상의 실상
 Ⅴ. 일제강점기 석굴암 감실구조의 변형
 Ⅵ.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한정호 Han joung-ho.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조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6,7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