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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구호물자와 서북출신 월남기독교인들의 세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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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War Relief and Empowerment of the Northwestern Christians

윤정란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34집 2015.06 pp.29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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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looks at how the Northwestern Christians (led by Han Gyeong-jik, organizer of the Christian Social Democratic Party) used the Korean War as an opportunity to secure leadership in South Korea through clerical struggles. Focusing on factors such as the control of relief supplies (the greatest financial resource for Christians at that time) and personal relationships with missionaries, the study explores the Christian struggles for leadership within the churches, explaining why Foreign Christian voluntary agencies and missionaries who controlled the war relief supplies selected Northwestern Christians, and the standards for their selections. After the Korean War, the Presbyterian Church was divided into the Kosin faction,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Kijang), etc., with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led by the Northwestern Christians, seizing leadership of the General Assembly. Their power was deeply tied to war relief, mission funding, and missionaries. The most important Foreign Christian voluntary agency was the CWS. Founded in the U.S. in 1946, this group took an interest in Korea because of the hardships experienced by Christians in the North under communism. After its consolidation in 1949, it halted its activities for a period during the Korean War, then reorganized in 1951. The relief projects conducted by the CWS were mainly for war widows, child welfare, and amputees. Relief goods from the CWS were so extensive that inspection was not possible. Recruiting on such a large scale required enormous publicity. Focusing on the immoral behavior of the communists, the cause was promoted in the U.S. and all over the world. Massacres, war widows, children, amputees, such were announced to the world to show the immorality of the communists. Christians across the globe, with the U.S. at center, gathered at the front lines of anti-communism. The CWS gained Korean supporters through the distribution of relief goods. If the CW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formation of the anti-communist front, U.S. mission headquarters and missionaries around the world expanded their influence in Korean churches through relief goods and mission funds. Such influence was possible largely because of the Northwestern Christians.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the Northwestern Christians and missionaries was possible because of their links dating back to the 19th century. Also important was Han Gyeong-jik's activities as interpreter and his personal association with the missionaries. The Northwestern Christians formed networks with the missionaries centered around the Yeongnak Church and the Northern Believers Representatives Association, through these series of relationships, the Northwestern Christians came to assume leadership of the Presbyterian Church General Assembly in the South immediately after the Korean War, and in the 1950s,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with Northwesterners at its center and with support from U.S. churches, rose as a strong anti-communist force and politically and socially influential group in the South.

한국어

지금까지 이 연구에서는 기독교사회민주당을 조직했던 한경직을 대표로 하는 월남한 서북출신 기독교인들이 한국전쟁을 기회로 남한에서의 교권 투쟁에서 어떻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를 밝혀보았다. 즉 이 시기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재정적 기반이 되었던 전쟁구호물자와 선교사들과의 관계, 이러한 관계 속에서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만들어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교단내의 주도권 투쟁, 나아가 구호물자를 손에 쥔 기독교 외원단체와 선교사들이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을 왜 선택했는지, 또한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찰하였다. 한국전쟁 직후 장로교는 고신파, 기독교장로회, 예수교장로회 등으로 분리되었으며, 총회 주도권을 예수교 장로회, 즉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이 장악하였다. 이는 한국전쟁기 구호물자, 선교 자금, 그리고 선교사 등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기독교외원단체 중 가장 대표적인 조직은 KCWS였다. 1946년 미국에서 창설된 이 단체가 한국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어려움에 처한 북쪽지역의 기독교인들 때문이었다. 1949년 공식적으로 조직된 이후 한국전쟁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951년 재조직되었다. 주로 전쟁미망인, 아동복지, 수족이 절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구호사업이었다. CWS의 구호물자는 점검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하였다. 이러한 구호물자를 모집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각지에 공산주의자들의 패륜적인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홍보하였다. 특히 학살 장면, 남편을 전쟁으로 잃은 과부들과 아이들, 그리고 수족이 절단된 사람들 등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패륜적인 사람들인지를 전 세계를 향해 알렸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각지의 기독교인들을 반공전선으로 결집시켰다. 또한 KCWS는 구호물자 분배를 통해 한국인들을 지지자로 만들었다. CWS가 전 세계의 반공전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미국 선교본부와 선교사들은 구호물자와 선교 자금을 통해 한국교회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들이 이러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월남한 서북 출신 월남기독교인들의 역할이 컸다.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과 선교사들이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말부터 연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한경직의 통역과 개인적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은 영락교회와 이북신도대표회를 중심으로 선교사와의 관계망을 형성해 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관계를 통해 한국전쟁 직후 장로회 총회는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이 주도하게 되었으며, 1950년대에 이들이 중심이 된 예수교장로회는 미국교회의 지지를 받아 강력한 반공세력이자 정치․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전쟁과 기독교계의 분열
 Ⅲ. 기독교세계봉사회(Church World Service)의 구호사업
 Ⅳ.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와 선교 자금
 Ⅴ. 북장로교 선교사와 월남한 서북 출신기독교인들과의 관계
 Ⅵ.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윤정란 Yoon, Jeong Ran.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한국전쟁연구국제사업사업단 연구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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