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粘土帶土器文化 流入期 模倣土器의 社會的 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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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cial Significance of a Imitation Pottery in the Late Bronze Age

점토대토기문화 유입기 모방토기의 사회적 의미

李亨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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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paper investigated on imitation pottery in the late Bronze Age when culture of a pottery with clay stripes had been brought in. As the pottery with clay strip culture of Liaoning province in China was flown into the Korean Peninsula, people who had produced and used these potteries started to have mutual exchanges with people who had produced and used plain coarse potteries, living around the Daedong river, Central region, and Hoseo region. As a result, imitation potteries, combining local manufacturing techniques with foreign ones, seem to have been created.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makers who had made the plain coarse potteries including imitation potteries could be women. Considering ethnography study targeting many other species in the world, the fact that almost all of pottery makers were women is something to note. In addition, another reliable evidence backing up the fact was found in prehistoric artifacts around there. So we need to verify that through further observation on the plain coarse pottery from now on. Given that foreign potteries and local ones coexist inside a foreign village and the gender of the pottery makers, the imitation pottery seems to be quite related to the women who moved out from a local group to a foreign group via marriage. It is, in other words, estimated that a bribe of the local group was involved in manufacturing potteries of the foreign group where her husband belonged. This is a rule of residence after marriage and is relevant to married couple’s living in the community which the husband belongs to. In the meantime the same analysis was attempted through an analysis on local villages. Marriage, which has never been discussed in the field of archaeology of Korea, seems to be a very important topic to understand and explain the cultural changes of those days

한국어

이 글은 토기가 지닌 다양한 의미 가운데 사회적 측면을 이해하는 작업 의 일환으로서 준비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원형점토대토기문화 유입기에 해당하는 청동기시대 후기의 모방토기를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중국 요 령지역의 원형점토대토기문화가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이 토기를 제작ㆍ 사용한 사람들은 대동강유역의 각형토기를 비롯해서 중부지역의 구순각 목토기와 외반구연토기, 그리고 호서지역의 외반구연토기 등을 제작ㆍ사 용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였다. 그 결과 하나의 토기에 재지계 제작기 법과 외래계 제작기법이 함께 나타나는 모방토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 하였다. 이 모방토기를 포함하는 무문토기의 제작자는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높 은 것으로 보았다. 이는 세계의 수많은 종족을 대상으로 한 민족지조사 결과 토기제작은 대부분 여성이 담당했던 것으로 나타난 점, 그리고 인접 지역의 선사시대 일부 유물에서 그 근거가 확보되었다. 앞으로 무문토기 의 관찰을 통해서 이를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릉 방동리유적과 같은 외래계 취락에서 외래계 토기와 재지계 토기 가 혼재하고, 모방토기를 포함한 토기제작자의 성별을 함께 고려하면, 이 모방토기는 혼인을 통해서 재지계 집단에서 외래계 집단으로 이동한 여성 과 관련이 깊다. 즉 재지계 집단의 신부가 남편이 속한 외래계 집단의 토 기제작에 관여한 결과의 산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이것은 혼인 후 거주 규칙으로서 혼인한 부부가 남편이 속한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현상과도 연 결된다. 한편 보령 관창리유적과 같은 재지계 취락의 재지계 주거에서는 외래계 토기가 공반하면서 모방토기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보령 교성리취락과 같은 외래계 집단의 여성이 혼 인을 통해서 관창리취락에 들어온 것 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았다. 재지계 취락과 외래계 취락에서 토기나 주 거 양상을 함께 고려한다면 여성의 이동은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재지집단과 외래집단 양자 모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었을 것이다. 남한으로 이주해 온 외래계 이주민집단은 고지성 취락의 입지를 보이 고 있는 점에서 볼 때, 이주 초기에는 토착 재지집단과 긴장ㆍ갈등ㆍ대립 관계가 나타났지만, 점차 양 집단 사이의 통혼을 통해 우호관계가 이루어 지면서 서로 융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한국고고학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혼인관계는 당시의 문화 변동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粘土帶土器文化 流入과 土器 模倣
  1. 각형토기와 점토대토기의 모방
  2. 구순각목토기와 점토대토기의 모방
  3. 외반구연토기와 점토대토기의 모방
 Ⅲ. 模倣土器의 社會的 意味
  1. 무문토기 제작자의 성별
  2. 모방토기로 본 혼인과 거주규칙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李亨源 이형원. 한신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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