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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輯論文 : 용성과 한암, 그 지성의 원류를 찾아서

백용성 율맥(律脈)의 성격 및 전개

원문정보

The Characteristics and Development of the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 of Yongseong Baek (白龍城)

이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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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Yongseong Baek(白龍城, 1864-1940), who is widely known as a monk and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was greatly proud of the “the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律脈)” in the lineage of Daeun(大隱), which he inherited. The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 in the lineage is the lineage that Daeeunnangoh(大隱朗旿) revived through the precepts transmitted in an auspicious vision(瑞祥受戒) in 1826 due to concerns about the discontinuance of the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 Daeeun’s the lineage was passed down to Yongseong since then after going through Geumdam(金潭), Choeui(草衣), and Beomhae(梵 海). Yongseong appears to have greatly been proud of his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 as such, and actively spread it. This study dealt with the characteristics and development of Yongseong’s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 with a focus on three issue. The first issue is about Yongseong’s teacher who confers the Buddhist precepts. Yongseong mentioned himself that his teacher was Seongok(禪谷). However, there has been frequent debates over it because information on Seongok does not exist at all. In particular, the possibility that he and the monk called Jesan(霽山) were the same person has been raised. However, existing studies have reviewed Jesanjeongwon(霽山淨願, 1862-1930) for Jesan in relation to Seongok. As Jesanjeongwon and Yongseong were only two years apart in age, it is difficult to view him as Yongseong’s teacher. In this sense, the opinion that Seongok and Jesan were the same person has been denied. In this regard, this study suggested the possibility that another Jesan other than Jesanjeongwon existed by reviewing various records showing that Jesan taught Buddhist precepts to certain monks such as Hoeun(虎隱) who was venerable. In other words, in relation to the issue of Yongseong’s teacher, Jesan is still considered a noteworthy individual. The second issue is Yongseong’s perception of the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 Yongseong was greatly proud of the fact that he inherited the tradition of the lineage of Daeun that originated from Korea. In those days, a number of monks used to go to China to continue the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 participate in the Buddhist initiation ceremony, and then come back. However, Yongseong understood the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 revived by China’s Goshimyeohyang(古心如響, 1541-1615) and the lineage revived by Joseon’s monks at the same level. In addition, his mindset was that as Joseon’s monk, he should naturally inherit the lineage revived in Joseon. This may show that Yongseong perceived that lineage could secure his identity as a monk and carry out the legacy of Korea’s Buddhism, and at the same time, it could strengthen Joseon’s national identity. The third issue is the development of the lineage in the lineage of Daeun after Yongseong. This study reviewed Yongseong’s activities to spread the lineage after receiving the commandments of Buddhism, and examined the fact that despite Yongseong’s pride in the lineage in the lineage of Daeun and his passionate activities to spread it, his lineage was not actively passed down to his disciples. In specific, Dongsan(東山), Goam(古庵), and Jaun(慈雲) exhibited outstanding achievements in observing the precepts and enhancement of the rules and disciplines, but did not pass down Yongseong’s precepts actively. This study paid attention to such disciples’ status of Buddhist initiation and walk of Buddhist life, and pointed out the fact that the perceptions and circumstances of monks during the respective period regarding the transmission of the lineage should be reexamined in detail.

한국어

승려이자 독립 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백용성(白龍城, 1864-1940)은 자신이 계승한 대은계의 율맥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대은계의 율맥이란 1826 년에 조선의 승려인 대은낭오(大隱朗旿)가 율맥의 단절을 우려하며 서상수계 를 통해 회생시킨 율맥이다. 대은의 율맥은 이후 금담(金潭), 초의(草衣), 범 해(梵海) 등을 거치며 용성으로 이어졌다. 용성은 이러한 자신의 율맥에 대 해 큰 자부심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적극적으로 전계(傳戒)해 갔다. 본고에서는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용성 율맥의 성격과 전개를 다루고 있다. 첫째, 백용성의 전계사 문제이다. 용성은 스스로 자신의 전계사를 선곡 (禪谷)이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선곡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 동안 적지 않은 논의가 있어 왔다. 특히 제산(霽山)이라는 승려와의 동일인 물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에서 선곡과 관련하여 검토 된 제산은 제산정원(霽山淨願, 1862-1930)이다. 제산정원은 용성과 불과 2살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용성의 전계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에 서 선곡과 제산의 동일 인물설은 부정되어 왔다. 이에 본고에서는 용성 당시 장로의 위치에 있던 호은(虎隱) 등에게 전계한 인물이 제산이었다는 여러 기 록을 검토하며, 제산정원이 아닌 또 다른 제산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즉, 용성의 전계사 문제와 관련하여 제산은 여전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대은계 율맥에 대한 용성의 인식이다. 용성은 자신이 한국 자생의 대은계 서상수계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 시 많은 승려들이 율맥을 잇기 위해 중국에 가서 수계식을 받고 돌아오는 경향이 있었지만, 용성은 중국의 고심여향이 회생시킨 율맥과 조선의 승려가 회생시킨 율맥을 동등한 차원에서 이해하였다. 그리고 조선의 승려인 자신은 당연히 조선에서 회생된 율맥을 잇는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는 용성에 게 있어 율맥이 승려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한국불교의 맥을 잇는 일임 과 동시에 민족의 주체성을 살리는 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생 각된다. 셋째, 용성 이후 대은 율맥의 전개 문제이다. 수계 후 용성의 전계 활동에 대해 살펴보고, 대은계 율맥에 대한 용성의 자부심과 열성적인 전계 활동에도 불구하고 실제 그의 율맥이 제자들 대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계승되지 못 한 점에 대해 고찰하였다. 특히 동산, 고암, 자운 등은 용성의 뒤를 이어 지 계나 계율 선양 등에 있어 훌륭한 업적을 보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용성율을 전승하지 않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수계 상황이나 행보 등에 주목하며, 당시 율맥 전승에 대한 승려들의 인식 및 상황에 대한 세밀한 재 검토의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목차

한글요약
 Ⅰ. 서론
 Ⅱ. 백용성의 전계사
 Ⅲ. 대은계 율맥에 대한 용성의 인식
 Ⅳ. 용성 이후 대은 율맥의 전개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이자랑 Lee, Ja-rang.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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