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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18세기 지식인들의 눈에 비친 역관 통역의 문제점 고찰 - 『노가재연행일기』ㆍ『을병연행록』ㆍ『열하일기』를 중심으로 -

원문정보

18th Century Consideration of issues reflected in the eyes of intellectuals interpreting yeokgwan - Focused on 『NogajaeYeonhaeng Diary』ㆍ『Eulbyeong Yonhaengrok』ㆍ『Yeolha Diary』 -

장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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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Joseon Dynasty period communication tool called Yeogkwan was used for the interpretation of international trade. It was concerned with analyzing information on the gongmuyeok practice using “communication.” However, the interpretations were of a meandering nature. In this chapter, we analyze the interpret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three writers, Kim chang-eop, Park Ji-won, Hong Dae-yong, to investigate whether these lead to conversation using any written form. The analysis reveals doubts about the ability of the first language, in Yeogkwan. Yeogkwan was used to try and ensure seamless communication for official duties to illuminate without meandering. However, Yeogkwan conversation was poorly interpreted in writing for the intellectual needs of the individual. Of course, this implies that “direct contact” is significant. However, this is only one aspect of yeokgwan communication records. The previous four events in China are also expected to be more important than would be expected. Strong action is not limited to a restraint, but includes ensuring a wide field of view and enhancing the interpretation of these visual Yeogkwan keotdeon as necessary for China, especially to resemble a perspective on the Yeogkwan.

한국어

조선 시대 역관은 통역관인 동시에 국제무역상이다. 그들의 임무는 정보 탐지 및 공무역 실무도 전담함으로써 모든 것을 ‘소통’ 시킨다. 그러나 이들은 통역을 맡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사행을 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본 장에서는 세 문인들의 눈에 비친 역관들의 통역에 대해 살펴보고 이들의 필담 시도에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신들이 한어를 능통하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연행 도중 이외에 특히 외교적 실무에서는 역관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의 연행록에는 정치ㆍ외교적, 문화적 교류 등의 다양한 기록들이 보인다. 그 가운데에서도 역관들의 통역 활동에 관한 내용들이 적지 않게 발견됨을 볼 수 있다.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은 역관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지적하였으며, 홍대용(洪大容, 1731∼1783),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기록의 내용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역관들이 통역에 문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세 문인들은 처음 역관의 언어 능력에 대해 의심을 갖기 시작한다. 역관은 사행의 공적업무를 위해 원활한 소통을 하려 노력을 하지만 한계를 내비추기도 했다. 세 문인들은 이러한 역관들의 통역에 부진함을 느끼고 자신들의 지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결국 필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의 필담이 ‘직접 만남’에 의미가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록에 보이는 역관 소통 양상이 필담으로 이르게 한, 하나의 면모로써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창업, 박지원, 홍대용은 중국에 대해 이전 사행사들에게 들은 바도 있었고 가고자 원했던 만큼 중국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또한 행동에 제한 없는 자제군관으로서 폭넓은 시야가 확보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역관의 사소한 통역 활동까지 볼 수 있었는데, 이로써 그들은 역관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사행의 역관 구성과 역할
 3. 三家 연행록의 통역과 필담시도
  3.1 언어 능력에 대한 의구심
  3.2 공적 업무와 역관 소통의 한계
  3.3 개인의 지적욕구와 필담시도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장안영 Jang, An-young.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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