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From Maurice Bardèche to Robert Faurisson, from Paul Rassinier toPierre Guillaume, the Holocaust denial proliferates in France after theSecond World War. Refusing the existence of the gaz chambers in NaziConcentration camps, they insist that the ‘myth of the holocaust’ is inventedto diabolize Hitler in charge of the Second World War. In this perspective,the Nazi extermination policy is a pure fabrication and just a victimizationprocess of the jews, aiming at legitimizing the establishment of jewishstate, Israel, founded by Zionists. In the name of Positivism, they refusethe intention of Hitler that is hard to justify on account of the absence ofarchives. Then, they set out a logical argument that the massacre of jewishpeople isn’t a historical fact but a ‘invented myth’ with the exaggeratednumber of victims from which can be usually arisen in war-time. Thisargument becomes a theoretical base which gives a indulgence to theNational socialism, and allows the extreme right wing to reset the newpolitical agenda in the post-war period. They call themselves their modes of thought ‘revisionism’, but this is distinguished from the usual meaning of this term: their revisionism refuses historical fact itself, whereas it means normally a different interpretation of a admitted historical event. French historian, Henri Rousso suggests calling it ‘negationism’ which highlights political aspects of this historical discourses system.
한국어
모리스 바르데슈부터 로베르 포리송까지, 폴 라시니에부터 피에르 기욤까지, 나치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대량 학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담론이 확산되었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설치되었 던 가스실의 실체를 거부하면서, ‘홀로코스트’의 신화는 히틀러를 비롯한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자들을 악마 화하고 유대인들을 희생자화시켜 시오니즘의 신봉자들이 건국한 이스라엘에 정당성을부여하기 위해 날조된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사료의 부재로 말미암아 증명할 수 없는 히틀러의 ‘ 의도성’을 거부하면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전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통상적 피해 상황을 부풀린 날조 된 ‘신화’에 불과하지 않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이 논리는 하나의 독립된 담론 체계를 형성하고 국가사회주 의에 면죄부를 주는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줌으로써 극우 정치 세력이 다시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었다. 즉, 이 논리는 공론의 장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분쟁을 이끌어 나가는 힘을 얻게 되 면서 민족전선을비롯한 극우 정치 세력에게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히틀러의 대량학살을 부정하는 이들 은 스스로 이러한 논리를 ‘수정주의’라고 명명하였다. 이들은 위법성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이 데올로기와 가치 체계를 끊임없이 설파하면서, 정치적·이념적 선전 수단으로서 네오-파시즘적 아방가르드 지 식인의 역할을 수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다양한 관점 중의 하나로 보이는 이들의 주장은 역사적 사건자체에 대한 거부라는 점 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수정주의와는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특징을 반 영하기 위해 역사학자 앙리 루소는 나치의 범죄 사실의 존재를 거부하는 일련의 담론 체계에 ‘부정주의’라는 이름을붙였다. ‘부정주의’라는 명칭은 일련의 극우 지식인들의 논의가 학문적 영역이 아닌정치적 영역의 문제 라는 사실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었다.
목차
2. 유대인 대량학살 부정하기의 논리: 사료 부재와 개인 경험의 재구성
3. 극우 정치 세력의 부활과 부정주의의 확산: 프랑수아 뒤프라와 로베르 포리송
4. 극우와 극좌의 결합과 반시오니즘적 역사인식: 수정주의? 또는 부정주의?
5.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