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鑑真渡日の理由に関する諸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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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son of the Ganjin visit to Japan

林南壽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제46호 2015.04 pp.31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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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鑑眞은 753년에 일본에 건너와서 戒律과 天台教學을 전함으로써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성격의 일본 불교가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때문에 감진의 渡日은 飛鳥시대의 불교전래에 버금가는 일본불 교사의 대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당으로부터는 絶域에 해당되었고, 험한 바다 너머에 위치하였기에 지옥의 문이라고까지 인식되 던 곳이었다. 감진은 이미 명망있는 고승이었지만, 12년간의 온갖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도일의 뜻을 이루었 다. 이 때문에 감진은 왜 도일을 결심했는가에 대한 연구가 일찍부터 이루어져왔다. 본고는 이 문제에 관한 선 행연구의 검토를 주된 목적으로 설정하고, 그 배경과 의의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먼저, 聖徳太子敬慕説은 일본 천태종의 성립 및 전개에 중심축을 이루는 것이지만, 이 연구의 기초사료인 『 東征傳』과 『名記傳』의 기사를 엄밀히 분석해보면 감진의 발언과 일본 승려들의 발언은 서로 엇갈리고 있 어서 감진이 성덕태자를 경모하여 도일에 이르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곤란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당의 스파이설은 나라시대의 정치사에 대한 인식의 상위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 자체는 검토의 대상은 아니 나, 일본 견당사의 傳戒師 요청 경위에 대한 문제의식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판단되었으며, 이는 감진 도 일이후의 불교계의 반응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어서, 慧思신앙설은 중국인 학자에 의하여 제기된 것으로, 감진이 혜사의 後身을 쫒아 일본에 건너가게 되 었다는 견해이다. 중국측 입장에서의 시각과 사료의 사용으로 그동안 일본인의 관점에 의해 이루어져온 연구 에 일석을 던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혜사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감진과 혜사, 천태신앙과의 관 계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한 점이 아쉽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천태불교포교설은 『名記傳』의 기사를 근거로 감진과 그의 제자들이 천태종을 전하기 위하여 도일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감진과 그 일행의 일본에서의 행적을 보면, 천태불교를 포교하기 위한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으므로, 설득력이 약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처럼, 감진의 도일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을 찾기 어렵다. 감진에 관해서는 당시의 다른 고승보다 많은 사료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위대한 승려로써의 감진의 이미지에 가려져 그 실상이 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 된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일시점이나 방법론에서 나아가 다양한 프리즘을 이용하여 스펙트럼을 넓혀서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일본어

七五三年、鑑真は渡日し、戒律や天台教学を伝えるなど日本の仏教界に新しい風を吹き込み、これによって 大仏以前とは異なる新しい日本仏教が動き出した。それゆえ鑑真渡日は飛鳥の仏教伝来につぐ日本仏教史上 における大事件といえる。  当時、日本は唐からは絶域と考えられ、唐人に地獄の門とも認識されていた。 ところが、鑑真は唐地においてすでに名望ある高僧で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身の危険を顧みず、渡日を決 心し、十二年間のあらゆる苦難にも挫けず、ついにその志を貫徹したのである。すると、鑑真がなぜ日本へ の渡海を決意したか、その理由を探ることは鑑真個人のみならず日本や中国仏教史の研究にきわめて重要な 問題といわねばならない。本稿では、この問題に関する先行研究を詳しく検討し、鑑真渡日をめぐる背景や その意義について考察した。  第一、聖徳太子敬慕説は日本天台宗の成立と展開において重要な意味を持つ のだが、基礎史料である『東征傳』と『名記傳』の記事を厳密に分析すると、鑑真と日本僧侶との発言に食 い違いがあり、鑑真が聖徳太子を敬慕して来日に至ったと解することは困難であると考えられる。  第二、 唐のスパイ説は奈良時代の政治史に対する認識の相違から始まる見解であり、検討の対象ではないが、遣唐 使の伝戒師要請に関する問題提起は一理あるものと考えられる。これは鑑真渡日後の日本における仏教界の 反応とも関連があるように思われる。  第三、慧思信仰説は中国人研究者によって提起されたもので、鑑真 が慧思の後身を追って日本へ渡ったという見解である。中国側の視覚や史料の引用によって、今まで日本の 観点から行われきた斯界に一石を投じたという点で注目に値する。ただ、慧思を強調したあまり、鑑真と慧 思、天台信仰との関係を明確に整理し得なかったことは惜しまれる。  第四,天台布教説は『名記傳』の記 事を根拠に鑑真と弟子らが天台仏教を日本に伝えるために渡日したという主張である。しかし、鑑真と弟子 らの日本における行跡をみると、天台仏教を布教するための活動はほとんどなく、説得力は弱いと考えられ る。    以上のように、鑑真渡日の理由については、今だ定説をみていないのが現状である。鑑真につい ては他の高僧に比して多くの史料が残っているものの、偉大な僧侶としてのイメージに囲まれてその実相が よく見えないようである。したがって、この問題は単一視点や方法論より多様なプリズムを用いてスペクト ラムを広げて研究することが望ましい。

목차

Ⅰ.はじめに
 Ⅱ.鑑真渡日に関する史料
 Ⅲ.聖徳太子敬慕説
 Ⅳ.唐のスパイ説
 Ⅴ.慧思信仰説
 Ⅵ.天台仏教布教説
 Ⅶ.むすび
 <日文抄録>
 <국문초록>
 <参考文献>

저자정보

  • 林南壽 임남수. 嶺南大学校美術学部 教授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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