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Park Gwi-hui (1921~1993) entered the circle of Pansori (Korean genre of musical storytelling, Epic Chant), and in the 1940s ~ 1950s, she was a leader in Changgeuk (traditional Korean opera) and women's Changgeuk. In the 1950s, Pansori was performed mainly as women's Changgeuk and Pansori aria (selection of choice Pansori lines). From the latter part of the 1950s, the complete performance of Pansori began to be restored by broadcasters. Broadcasters attempted to record the complete performance of Pansori through then famous Pansori performers, who practiced forgotten or un-learned lines to record them. Park Gwi-hui's Pansori was one of such efforts. In 1960, Park Gwi-hui learned Heungboga Pansori from Park Nok-ju and recorded the complete performance of it twice. Two recordings were achieved with a relatively time gap, thereby giving a glimpse of how she further developed her performance of Pansori. Park Gwi-hui's Heungboga Pansori performance is not really different from that of Park Nok-ju in terms of the frame. However, in terms of details, she tried to perfect her own work according to her view of music. Park Gwi-hui revised inappropriate and irrational contents of Pansori, and positively accepted new libretto. By recording alone, Park Gwi-hui's Heungboga partially has worldly language and lacks detailed perfection, but the comparison of the two recordings suggests how much she tried to perfect the music. However, after Park Gwi-hui was designated as the holder of important intangible heritage as Pansori singer to the accompaniment of Gayageum (Korean zither), she stopped further developing her Pansori performance.
한국어
박귀희(1921~1993)는 처음 판소리에 입문하여 1940~1950년대 창극과 여성국극의 주역 으로 활동을 하였다. 1950년대 판소리는 여성국극, 도막소리 위주로 공연을 하였다. 1950 년대 후반부터 완창 판소리 복원에 나선 곳은 방송국이었다. 방송국에서는 판소리 완창 을 녹음하기 위해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명창들에게 완창 녹음을 의뢰하였으며, 명창 들은 잊어버리거나 배우지 못한 대목을 다시 연습하여 녹음을 하였다. 박귀희의 판소리 도 그 사례의 하나이다. 박귀희는 1960년 박녹주로부터 흥보가를 배워서 흥보가 완창을 두 번 녹음하였다. 두 녹음은 비교적 가까운 시간차를 두고 녹음되었기 때문에 그가 판소리를 어떻게 다듬어갔 는지 살펴볼 수 있다. 박귀희의 흥보가는 박녹주와 골격에서는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세부적인 면에서는 자신의 소리관에 따라 다듬어서 완성된 작품을 추구하였다. 박귀희는 점잖지 못하다거나 합리적이지 못한 내용을 수정하였고, 새로운 사설을 적극적으로 수용 하였다. 녹음으로만 볼 때 박귀희의 흥보가는 통속적인 음악어법이 일부 남아있고, 세부 적인 완성도가 부족하지만, 두 녹음을 비교해 보면 음악의 완성을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공을 들였는가 하는 것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곧 가야금병창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로 지정되면서 그의 판소리는 더 이상 성장을 멈추었다.
목차
1. 서론
2. 박귀희의 판소리 녹음
3. 박귀희의 흥보가와 전승 태도
4. 마무리
참고문헌
부록: 박귀희 판소리 사설
Abstract
토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