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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문 : 산동과 한국 고전문학

『入唐求法巡礼行記』に描かれた在唐新羅人

원문정보

The Shragi's People Drawn by "Ennin's Travels in Tang China"

『입당구법순례행기』に묘かれた재당신라인

袴田光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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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Ennin was a Japanese Buddhist in 9th century. He migrated to the Tang China to learn the Buddhism and stayed there during 9 years. A period of his travel, he kept writing his travel diary called "Ennin's Travels in Tang China ". In this travel book he recorded about Shragi's people who lived in the Tang. Special mention means putting is the case that the Shragi's people did much aid very kindly to Ennin. Why were the Shragi's people so cooperative to him? Because Chang Boko who was a leader of Shragi's people in the Tang supported him. He permitted boarding at Shragi's temple built by Chang in Sekizan and could be helped by Shragi's people in there. Chang Boko and Shragi's people met a close relation with Japan through their trading. And they didn't stick to the nationality and status. So they supported Ennin generously. He thanked them deeply. According to Ennin's biography he built a temple for God of Sekizan after returning his home country. But it is clearly different from Ennin's travel book written in the 9th century to his biography written in 10th century. God of Sekizan had changed from a foreign god to a Japanese palladium. The Change means that the gig diplomatic and cultural conversion has formed in Japan from the 9th to the 10th. After the 9th century, Japan rapidly became the autism and the nationalism. The time of Ennin and Chang Boko was the last blaze of East Asia collective.

한국어

엔닌(円仁)은 9세기에 활약한 일본의 승려이다. 그는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 당 에 건너가 9년간 체재하였다. 그동안 그는 계혹 여행기를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바 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라고 불리는 책이다. 이 책은 당시 재당 신라인들에 대한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그 신라인 들이 엔닌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는 점이다. 재당 신라인들이 엔닌에게 왜 협조적 이었을까? 그 가장 큰 이유로 재당 신라인들의 리더였던 장보고(張保皐)가 엔닌 을 원조하였던 사실을 들 수 있다. 엔닌은 장보고가 적산(赤山)에 창건한 사원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아 그곳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나타나는 재당 신라인들은 무역활동을 통해 일본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 었고, 또한 국적과 신분에 얽매이지 않은 집단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들은 엔닌 을 원조하였고 엔닌도 그들에게 깊이 감사하였다. 엔닌의 전기에 의하면 그는 귀 국 후 적산의 신을 위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9세기에 쓰인 엔닌 자신 의 여행기와 10세기에 쓰인 엔닌의 전기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발견된다. 적산 의 신은 이국(異國)의 신에서 일본의 수호신으로 변용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적산신의 변화는 9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일본에서 외교적, 그리고 문화적 전환 이 발생하였음을 의미한다. 엔닌이 살았던 9세기 이후. 일본은 급속히 자폐성(自 閉性)과 자국주의에 빠져 들기 시작한다. 엔닌과 장보고의 시대는 동아시아적 공 동체의 마지막 번영기가 되었다.

일본어

円仁は、9世紀に活躍した日本人の僧侶である。彼は、仏法を学ぶため唐に渡 り、9年間滞在した。その間、彼は旅行記を書き続けたが、それが、入唐求法巡 礼行記と呼ばれる書物である。同書の中には、当時、唐で暮らしていた新羅の 人々について多くのことが記録されている。特に注目されるのは、その在唐新羅人 たちが円仁に対して非常に親切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なぜ、在唐新羅人たち は円仁に対して協力的であったのだろうか。その最大の理由は、在唐新羅人たち のリーダーである張保皐が、円仁を援助したからである。円仁は、張保皐が赤山 の地に創建した寺院に寄宿することが許され、そこで多くの助けを得ることができ た。入唐求法巡礼行記に描かれた在唐新羅人たちは、貿易活動を通して、日本 とたいへん密接な関係にあったことがわかる。その上、彼らは、国籍や身分という ものに囚われない集団であったことも窺われる。それゆえ、彼らは円仁を援助し、 円仁も彼らに深く感謝した。円仁の伝記によれば、彼は帰国後に赤山の神のため に一つの寺院を建立したという。しかし、9世紀に書かれた円仁自身の旅行記と10 世紀に書かれた円仁の伝記の間には、明らかな相違が見られる。赤山の神は、異 国の神から日本の守護神へと変容しているのである。この赤山神の変化は、9世紀 から10世紀にかけて、大きな外交的な、また文化的な転換が日本で生じたことを意 味するものと考えられる。そして、円仁の生きた9世紀以降、日本は急速に自閉性 と自国主義を深めていくようになる。円仁と張保皐の時代は、東アジア的共同体 の最後の輝きであったとも言えるだろう。

목차

국문초록
 要旨
 1. はじめに
 2. 円仁の旅の概要
 3. 円仁の出逢った新羅人たち
 4. 張保皐と日本
 5. 転換期としての9世紀
 6. まとめ
 参考文献
 Abstract

저자정보

  • 袴田光康 Mitsuyasu Hakamada. 日本 静岡大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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