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When describing the disaster at Sewol-ho, some pastors repeated thoughtless remarks about this accident being prepared by God for Korean people. Concealed beneath this argument is the undigested and shallow-minded theodicy. The term theodicy was coined by German philosopher G. W. Leibniz, though various responses to the problem of evil had been previously proposed. His theodicy tries to justify the apparent imperfections of the world by claiming that it is optimal among all possible worlds. It must be the best possible and most balanced world, because it was created by an all-powerful and all-knowing God. Contemporary philosophers are critical toward the Leibniz’ concept. Following the Holocaust, French Jewish philosopher Emmanuel Levinas argued for the impossibility of theodicy. This paper attempts to answer the question, ‘Can human suffering be perceived as ‘good’ such as Leibniz argues in his radical notion of theodicy?’ I begin by summarizing different approaches to the problem of suffering, such as suffering as punishment for sins, as education and purification of the righteous, and as evil that is permitted in order to highlight the good(Ch.2). Next, I discuss how a critical approach to theodicy demonstrates that a cruel God who punishes the innocent people is problematic, that education and purification theory is insupportable, and that theodicy is not interested in the suffering of individuals and moreover disrupts active resistance against evil(Ch.3). I use Thomas Aquinas’ distinctions and evaluations of pain and sorrow to determine whether or not two positions which seem to be contradictory can stand together. According to Aquinas, all pain is itself an evil, however, ‘on the supposition of something else’, on the supposition of a shameful deed done, it is said to be good. By this logic, suffering can not only be instrumentally good, but also contains moral goodness. Aquinas also contends that suffering which is not to sublate can lead to transcendence; he even evaluates suffering positively, when it reminds us of the moral responsibility to reduce the pain of others(Ch.4). Finally, I reflect on different attitudes and approaches to alleviating pain or sorrow.
한국어
세월호 사건과 같은 참사 앞에서 일부 목회자들은 신의 뜻이라 고 설명하는 망언을 반복했다. 이러한 주장 뒤에는 제대로 소화되 지 못한 천박한 ‘변신론’(辯神論, Theodizee)적인 전제가 숨어 있 다. 이러한 변신론적인 해석은 ‘변신론’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근 대철학자 라이프니츠(G.W. von Leibniz)에게서 완성된 형태로 나 타났다. 그는 악 없이 선이 존재할 수 없고 악을 거쳐 선이 증가된 다며 전체의 조화를 위해 악 자체는 좋은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 다. 더 나아가 그는 가장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은 최선의 가능한 세계를 선택하여 현실화했다는 극단적인 낙관론을 펼쳤다. 그런데 이러한 변신론에 대해서 현대의 사상가들은 강한 비판을 제기했 다. 레비나스(E. Levinas)는 20세기의 아우슈비츠 사건 이후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변신론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 다. 이 논문은 ‘인간의 고통은 일부 극단적인 변신론의 주장처럼 선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다룬다. 우선 변신론이 형성되어 온 과정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이란 죄에 대한 벌, 의인(義人)의 교육이나 정화를 위해 신이 행한다거나 선을 부 각시키기 위해서 허용한다는 순서로 다룬다.(제2장) 이어서 이러 한 변신론적인 설명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과 이에 대한 비판, 즉 무죄한 이를 처벌하는 잔인한 신에 대한 표상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고, 정화와 교육이론은 거대한 악 앞에서 설득력을 잃으며, 변신 론은 근본적으로 고통받는 개인에 대해 무관심하며 악에 대한 적 극적인 저항을 방해한다는 점을 밝힌다.(제3장) 계속해서 과연 모 순되거나 상충되어 보이는 두 관점이 양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토 마스 아퀴나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다양한 구분과 평가를 통해 검토한다. 모든 고통은 ‘단적으로 그리고 그 자체로’ 바라본다면 악 이지만, ‘어떤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예를 들어 수치스러운 일이 이미 벌어졌다는 전제 아래에서 이에 대한 슬픔이나 고통은 선 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러한 고통은 선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 는 도구적인 선일뿐 아니라 그 자체로 윤리적인 선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 지양될 수 없는 고통이 초월성으로 이 끌거나, 타인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윤리적인 책임을 상기시 킬 때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제4장) 마지막으로 고통에 대 한 어떠한 방식의 충고나 태도가 고통받는 당사자들에게 위안을 주고 고통을 경감시켜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반성해 보았다.
목차
2. 고통에 대한 변신론적 해석의 발전과정
3. 고통의 변신론적 해석에 대한 비판
4. 고통과 슬픔에 대한 저항과 수용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