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puepose of this article is to understand the early period buddhist policy in Silla(新羅), by reviewing the epitaph found in Silla royal court. King Bupheung(法興王) and King Jinheung(眞興王) are those who accepted the buddhism to Silla so that they can establish strong leadership enough to make Silla a centralised nation. They chose the vally of Chunjeonli(川前里) as the place for the above sake, a sacred place from the neolithic era remains there, they were collectively responsibility to Chunjeonli region.
한국어
본 논문은 울산 천전리의 명문이 새겨진 공간과 지역에 주목하면서 신라왕실이 왜 이곳을 주 목하여 이러한 명문을 새겼는지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명문에 새겨진 시기의 전후 상황을 살 펴보고, 확인 가능한 인물들의 행적과 관련사건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 명문의 의미를 추구해 보 았다. 그 결과 <178>의 계사명(513)은 법흥왕 즉위 1년 전의 것으로서 고구려와의 관련 속에서 법흥왕의 불교이념이 울산지역과 연대하며 여성이 참여하는 제의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23>의 을사명(525)은 법흥왕 12년 6월 18일 새벽에 법흥왕의 동생인 입종갈문왕 이 와서‘書石谷’이라 명명하고, 多煞의 제의를 거행하였음을 새긴 내용이었다. 이는 입종갈문 왕이 이 지역의 지지기반을 확인하고, 새벽의 예불시간에 부인들이 참여하며 희생물을 바치는 불교와 전통종교의 융화를 보여주는 제의를 거행한 것이었다. 입종갈문왕이 이곳을 다녀간 3년 후에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였으며, 4년 후에는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정책의 일정한 성과가 있 었다. <179> 갑인명(534)은 신라의 첫 번째 사찰인 흥륜사를 大開하기 1년 전의 것이었다. 大 王寺에 있는 安藏法師가 다녀갔음을 새겨놓은 것인데, 이는 처음으로 사찰의 이름과 불교승려 의 이름을 바위에 새긴 것으로 이들이 이곳에서 불교적 제의를 거행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불교 공인 이후 법흥왕의 불교이념이 실행되었음을 보여준다. <161>을묘명(535)은 흥륜사를 大開한 해의 것이다.‘법흥대왕 때에 비구승과 사미승과 이 지역인들이 함께 왔다’는 것은 법흥왕이 이 지역인과의 연대 속에서 불교의 大衆化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12> 기미명(539)은 진 흥왕이 즉위하기 1년 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과 법흥왕비인 보도부인, 그리고 어린 진 흥왕이 와서 입종갈문왕을 그리워하며 제의를 거행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입종갈문왕의 업적 을 기리면서 진흥왕도 법흥왕의 불교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 때 거행 한 제의는 전통종교에 기반을 두면서도 불교식 제의를 조화시킨 형태였다. <45>계해명(543)은 小舍의 낮은 官位의 부인이 행차한 것이다. 이는 진흥왕 초기에 신라왕실의 불교정책이 전통종 교와 조화하며 낮은 신분과 여성을 지향하는 신라식의 불교대중화정책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 여준다. <68>을축명(545)은 흥륜사를 낙성한 1년 후에 진골여성이 낮은 신분의 남성과 함께 대 규모의 위세를 갖추고 왔다는 내용이다. 흥륜사의 낙성을 경축하는 의미의 행차이지만 사찰이 나 승려명은 기록하지 않았으며 신분의 고하와 남녀의 성별에 관계없이 참여시키고 있다. 이는 불교의 대중화와 함께 토착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39>와 <105>는 같은 인물인 김 혜훈의 이름을 2번 새긴 것이었다. 혜훈은 진흥왕대의 인물로 황룡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최고 의 승관 지위에 있었다. 혜훈과 황룡사, 진흥왕과 울산이 긴밀히 연결된 것은 황룡사의 장육존 상을 고리로 한 왕실의 불국토 이념이었다. 아육왕이 보낸 황금과 황철은 울산에 도착하여 아육 왕의 장육존상이 현실 속에 만들어졌고, 울산의 동축사에는 아육왕이 보낸 삼존상의 모형이 안 치되었다. 동축사와 관련된 불국토이념은 이후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구심력이 되었다. 이러한 불국토이념이 울산 천전리에서 가능하였던 것은 선사시대 이래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 며 이어왔던 역사적 제의장소로서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혜훈은 신라왕실의 불국토 이 념을 실현시킨 중요한 인물이었다. 법흥왕과 진흥왕은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통치국가의 수립을 위해서 불교를 통하여 국민을 결 집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절실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실이 선택한 곳이 전통적으 로 다양한 제의가 베풀어졌던 천전리 聖所였다. 이 지역의 종교융화전통과 지역민과의 연대를 통해 신라왕실이 불교정책을 실행함으로써 제1가람인 흥륜사가 창건되었고, 신라 국보1호인 황 룡사 장육존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김혜훈과 관련된 불국토이념은 호국불교이념으로 발전하 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정신적 구심이 되었다. 그 시작이 울산지역의 천전리 聖地를 중심으 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이곳에 새겨진 명문들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울산 천전리 명문은 이 곳이 신라왕실의 불교이념을 지지하는 중요한 기반지역이었으며, 왕실불교이념의 토착화과정 을 보여주고 있다.
목차
I. 머리말
II. 연대추정이 가능한 명문의 내용
III. 천전리의 공간적 성격
IV. 맺음말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