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안확(安廓)과 수사(數詞) - 초판본 <조선문법(朝鮮文法)>(1917)을 중심으로 -

원문정보

An Hwak and Number - focusing on firstly published Joseon Munbeop(1917) -

최형용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Number as a kind of parts of speech has become generally known to be firstlyestablished in Joseon Munbepo(1917) (as an ‘An Hwak(1917)’ hereafter) by AnHwak in the history of Korean grammar research so far. Number as a kind ofparts of speech was already found in Underwood(1890), which was first as awork of foreign scholar, Scott(1893) and Takahasi(1909) etc. Before JoseonMunbepo(1917) by An Hwak coming into existence recently, we can see thecontent of number as a kind of parts of speech indirectly through the revisedversion of Joseon Munbepo(1917), Joseon Munbepo(1923)(as an ‘AnHwak(1923)’ hereafter). And the An Hwak(1923)'s grammar system includingparts of speech has been said to be influenced by Japanese grammar such asTakahasi(1909) etc. However, the direct investigation of An Hwak(1917)'snumber as a kind of parts of speech demonstrates to us that the AnHwak(1917)'s number as a kind of parts of speech was very similar toUnderwood(1890)'s in the fact that they had ‘classifier’ and ‘numerals for timeand measure’ etc. altogether not to Japanese grammar's such asTakahasi(1909)'s etc. This shows us that, contrary to the general viewpointsso far, An Hwak(1917)'s number as a kind of parts of speech was not influencedby Japanese grammar but by Underwood(1890)'s as far as number as a kindof parts of speech is concerned.

한국어

국내의 문법 연구에서 품사로서의 수사는 자산 안확의 초판본 조선문법(朝鮮文法)(1917)에서 처음으로 설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국인 학자로는 Underwood(1890)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Scott(1893)에서도 수사의 설정을 확인할 수 있다. 前間恭作(1909), 高橋亨(1909) 등 일본 학자들도 수사를 설정한 바 있다. 그런데 안확(1917)은 최근에서야 그 모습을 드러내었고 지금까지 수사의 설정은 수정재판인 안확(1923)을 통해 그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안확(1923)을 중심으로 그 문법 체계의 설정은 일본 학자들의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어 왔다. 그러나 우선 안확(1923)의 체계도 조수사 즉 분류사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수사 체계에서 인정하고 있지 않은 앞의 일본 학자들과 차이가나고 오히려 Scott(1893)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안확(1917)의 수사는 안확(1923)과 비교한 결과 ‘기본수사, 서수사, 시수사, 양수사, 조수사’ 체계에서 ‘시수사’와 ‘양수사’가 사라져 ‘원수사, 서수사, 조수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체계와 내용이 단순화하였음을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안확(1917)의 수사는 체계와 내용면에서 ‘명적 수사’와 ‘형용적수사’를 구분하고 수사를 폭넓게 인정한 Underwood(1890)의 수사 체계와 흡사하다는 것을발견할 수 있다. 이는 안확(1917)의 수사가 일본 학자가 아니라 Underwood(1890)의 수사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임을 결론짓게 한다. 이렇게 보면 안확(1917)에서 안확(1923)으로 수사 체계가 변경된 것은 다시 Scott(1893)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수와 관련된 포괄적 체계로서의 수사’에서 ‘수를 지칭하는 수사’로 그 초점이 달라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안확(1917) 이전의 한국인에 의한 수사의 인식
 3. 안확(1917) 이전의 외국인에 의한 수사의 인식
 4. 안확(1917)에서의 수사의 특징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최형용 Choi, Hyung-Yong.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전공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6,1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