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기획논문 2 : 신묘 통신사행과 유구사절단의 비교

조선통신사와 류큐사절단의 筆談(對談) -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를 중심으로 -

원문정보

Pildam of Joseon Tongshinsa and Ryukyu Diplomatic Delegation - Focused on Arai Hakyuseki -

조영심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영어

This article was written to investigate Tongshinsa in 1711 (the year of Shinmyo(辛卯)) more objectively. To do so, comparison was made with Ryukyu diplomatic delegation, which was a third power, taken place during the contemporary period. Gang-gwan-pil-dam, which is the compilation of the conversations by writing exchanged between Joseon Tongshinsa and Arai Hakyuseki (1657-1725), who was a consul of Japan´ s feudal government in early 18thcentury, and Baek Suk Sun Sang Ryu In Mun Dae that is the conversations by writing of Ryukyu diplomatic delegation, were used as the main text for the study. Arai Hakyuseki contacted Josoen Tongshinsa in 1682 and 1711. Gang-gwan- pil-dam is the compilation of the conversations that he made with Samsa(三使) from Joseon. Baek Suk Sun Sang Ryu In Mun Dae seems to be a record on the conversations exchanged between Arai Hakyuseki and Ryukyu diplomatic delegation in 1710 and 1714. During this period, Arai Hakyuseki was the leading character in the administration of Japan’ s feudal government. He exchanged discourses to his position. Gang-gwan-pil-dam shows mutual affinity and jokes as well as connotes the ostentation and check on each country exchanged between Arai Hakyuseki and Joseon Tongshinsa. It seems that the both parties had exchanges conversations in equal footing, displaying knowledge that they had accumulated. On the other hand, Baek Suk Sun Sang Ryu In Mun Dae consists of the one-sided questions of Arai Hakyuseki and the answers of Ryukyu counterpart. It seems that when he met Ryukyu counterpart, Arai Hakyuseki had asked questions out of the question list he prepared while learning the knowledge of Ryukyu. It was a rare opportunity for Arai Hakyuseki to obtain information through Ryukyu. What was found from the two texts is the interest Arai Hakyuseki had in ‘China’. However, he used quite different ways to express. In Baek Suk Sun Sang Ryu In Mun Dae, Arai Hakyuseki appears to reveal his curiosity, tossing questions to Ryukyu counterpart about China several times. In the meantime, Gang- gwan-pil-dam shows that he had focused on expressing his knowledge in China, quoting Chinese literature. It can be regarded as part of ‘Showing-Off Diplomacy’, hiding his curiosity about China and showing that Japan supports Chinese system. In the hidden lines, he showed a check on Joseon and effort to stand on equal footing with Joseon.

한국어

본고는 1711년 신묘통신사행을 보다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동시대 일본에서 이뤄졌 던 외국인 행렬인 류큐사절단과 비교했는데, 18세기 초 막부의 집정관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1657~1725) 가 조선통신사가 나눈 필담을 정리한 『강관필담(江關筆談)』과 류큐사절단이 나눈 필담을 정리한 『백석선생 류인문대(白石先生琉人問對)』를 주 텍스트로 이용하였다. 아라이 하쿠세키는 1682년과 1711년 통신사와 접촉했는데, 『강관필담』은 1711년 조선 측 삼사(三使) 등과 나 눈 필담을 정리한 것이다. 『백석선생류인문대』는 1710년과 1714년 류큐사절단을 만나 대담한 기록으로 보인 다. 이 시기 아라이 하쿠세키는 막부의 행정을 주도하는 인물이었기에 그의 위치에 따른 대담이 오갔다. 『강관필담』의 경우 아라이 하쿠세키와 조선통신사들 간에 자국에 대한 과시와 견제가 깔려있으나 우호와 사 귐의 정을 나누며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도 나타났다. 대등한 관계에서 그 동안 쌓아놓은 지식을 표출하며 필담 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백석선생류인문대』의 경우는 아라이 하쿠세키의 일방적인 질문과 류큐 인 상대의 대답으로 이루어져있다. 아라이 하쿠세키는 류큐에 대한 정보를 서적을 통해 습득하던 중 발생한 질 문들을 문목으로 만들어놓고 류큐 사절을 만나자 질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라이 하쿠세키에게 있어서는 자주 접할 수 없는 류큐인을 통해 이국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기회였던 것이다. 두 텍스트에 모두 드러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아라이 하쿠세키의 관심이다. 그런데 이 관심이 표출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백석선생류인문대』의 경우, 여러 차례 중국에 대한 질문을 류큐인에게 던지며 자신의 호기심 을 드러냈다. 반면, 『강관필담』에서는 중국 문헌을 인용하며 중국에 대한 지식을 표출하는데 집중한다. 중국 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고, 일본이 중화의 제도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강조하는 ‘내세우기 외교’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 속에는 조선에 대한 견제와 조선과 동등한 선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담겨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강관필담(江關筆談)』속 통신사와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관계
  2.1. 신묘통신사와 아라이 하쿠세키의 만남
  2.2. 『강관필담』의 구성과 내용
 3. 『백석선생류인문대(白石先生琉人問對)』속 류큐사절단과 아라이 하쿠세키의 관계
 4. 양국 사절단에 대한 태도의 차이
 5. 마치며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조영심 Cho, Young-sim. 연세대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 7,500원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