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Japan in the early Meiji Period confronted on Imperialism of Westerners which planed to solve their crisis of economy through the foreign entry. The state of Japan in the late 1880s and early 1890s can be described as experiential through the records left by the British such as George Nathaniel Curzon, Arnold Henry Savage Landor, Isabella Bird Bishop who visited in Japan. In addition, the comparison with Korean situation at that time can be researched more easily with this work. Japan was pushing into modernization through Meiji Restoration when these three English people visited in Japan. As a result, the conditions of the transportation, the accommodation, roads , the military system, politics were better than Korea at that time. But the appearance of women as a social figure was remained as a pre-modern society. While Korea was ‘weak’ and the bureaucratic system was still remained at the same time. In addition, it was a weak country in the military system . Korea was seen in the eyes of Westerners as a non-modernity country. Although the perception on Japanese culture of the three English people in this paper may not be able to be completely far from the Orientalism which made oriental countires ‘others’, they recognized Japan with a wide range of perception.
한국어
메이지(明治) 초기 일본은 경제적인 위기를 대외적인 진출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 서양의 제국주의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양국을 방문한 George Nathaniel Curzon, Arnold Henry Savage Landor, Isabella Bird Bishop 3인의 영국인이 남긴 기록물을 통해 1880년대 후반과 1890년대의 초반 일본의 모습을 체 험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또한 한국과의 비교도 심층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이 방문했던 시기의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 숙 박, 도로, 군대, 정치 등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과 비교하여 매우 우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인 속박과 굴레의 모습과 같은 전근대적 모습도 남아있는 사회였다. 반면 같은 시기 한국은 ‘약하고’ 관료적인 체제가 남아있고 군사체제도 약한 나라였다. 서양인의 눈에 서 본 한국은 ‘근대성’이 거의 없었다. 이 논문에서의 영국인 3인은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동양국가를 ‘타자’로 하는 시각에서 완전히 떨어질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일본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2. 19세기 말 서양인의 동양 인식
3. 영국인의 일본과 한국 인식
3.1 정치와 군사제도
3.2 거리와 위생
3.3 여성
3.4 식생활
3.5 한국인과 일본인의 대외인식
4. 영국인 인식 속의 오리엔탈리즘
5. 마치며
【參考文獻】
<要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