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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 하와이 이민 사회의 민족 인식 - 『국민보』기사를 중심으로

원문정보

The National Recognition of Korean Immigrant Community in Hawaii Before and After Korean Liberation : Focusing on the Article, Titled Gukminbo

배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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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Early Korean community in Hawaii was an overseas Korean community, which was the result of Hawaii agricultural immigration, driven in the period of three years from 1903 to 1905. In those days, the immigration was led by the immigration policy of the Korean Empire. However, after the Ulsa Treaty (Japan-Korea Protectorate Treaty) in 1905, the policy of immigration prevention was enforced, and subsequently immigration in the Korean peninsula did not continue. Early Korean community in Hawaii was comprised of ethnic group, isolated from the continental US and Hawaii. In addition, the self-recognition and national recognition of Korean immigrants were established independently, without connection with the colonized the Han(韓) Peninsula. The Korean Empire claimed to be a modern nation state and Hawaii immigrants were the people who observed the change of the nation with their eyes to some degree. Accordingly, they did not forget that they were the citizens of the Korean Empire. They represented themselves with Daehan(大韓) or its shortened form, Han, contrary to Chosun(朝鮮), which was the representation of Korean people, appointed by the Japanese imperialism. In regard to their self-representation, Chosun, which was the real space of Korea that implies the meaning of long-cherished history and political and geographical entity was excluded. From the perspective of Hawaii immigrants, the name of Chosun meant the homeland of Korea which became a colony of Japan. Therefore, it is judged that Chosun was regarded to have the meaning of Japan. Therefore, Hwaii immigrants tried to grab the name of destroyed country to keep their identity. In fact, the use of the word, Daehan during the period between 1910 and 1945 implied the meaning of resistance to Japan. Meanwhile, when the Pacific War broke out in December, 1941 the Korean community in Hawaii was caught by the obsessive idea that they should separate themselves from the colony, Chosun. In this regard, this paper focuses on the national recognition and self-representation of Korean immigrants in Hawaii by setting the time zone around Aug. 15, 1945. This study aims to indicate that the cultural foundation which contain the representation and recognition about the nation is not permanent and traditional, but it depends on outside circumstances and can change in view of national policy.

한국어

하와이 한인 사회는 1903년부터 1905년까지 3년여의 기간 동안 추진된 하와이 농업 이민의 결과로서 형성된 재외 한인 사회였다. 당시의 이민은 대한제국 시기 국가에 의해 주도된 이민 정책이었다. 그런데 1905년 을사수호조규 체결 이후 해외 이민 금 지 정책이 시행되어 이후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이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들은 미국 본토와 하와이 사회 내에서 고립적으로 존재한 민족(民族) 집단으로 이들 의 자기 인식이나 민족 인식은 식민지 한반도 본토에서 유리된 채 독립적으로 이루 어진 것이다. 대한제국은 짧은 기간이나마 근대적 민족국가를 표방하였으며 하와이 이민들은 약 간이나마 그 변화상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대한제국 의 국민임을 잊지 않았다. 이들은 한반도의 내지인들이 일본 제국주의가 부여한 ‘조 선’으로 자신을 표상한 것과는 달리 ‘대한(大韓)’이나 그 축약된 형태의 ‘한(韓)’으로 자신을 표상하였다. 이들의 자기 표상에는 유구한 역사적 의미와 정치적·지리적 실체로의 현실적 공간인 ‘조선’이 배제되었던 것이다. 하와이 이민의 입장에서 조선이라는 명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버린 본토를 의 미하는 것으로 그것은 결국 일본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녔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 라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국가, 멸망한 나라의 이름을 부여잡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 간 동안 대한(大韓)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일제에 대한 저항과 마찬가지의 의미였다. 한편, 1941년 12월 이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한인 사회는 식민지 ‘조선(朝鮮)’ 에서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본 논문은 특히 1945 년 8월 15일을 둘러싼 제한적 시간대를 중심으로 이들의 민족 인식과 자기 표상에 주목하였다. 이는 ‘민족’에 대한 표상과 인식이 자리 잡은 문화적 토대가 유구하고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며, 때론 정책적 고려에 따라 언제 든 바뀔 수 있는 것임을 드러내는 데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하와이 이민 사회의 형성과 『국민보』
 2. 8월 15일 이전 하와이 이민 사회의 자기 인식
  1) ‘대한’의 지속
  2) 내지인들과의 차별성
 3. 8월 15일 이전 하와이 이민 사회의 동포와 민족 인식
  1) 하와이 이민의 동포에 대한 인식
  2) 하와이 이민의 민족 인식
 4. 8월 15일 이후의 하와이 이민 사회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배재훈 Bae, Je Hoon.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연구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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