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written for those objectives: take a general view of Bongnyeongsa's history from modern and contemporary, and examine Bongnyeongsa's phase as a Buddhist temple and its meanings which formed at same period above. A writer made an effort for collecting chronicle material related to Bongnyeongsa maximally and added the grasped contents by chronological way at 「Main history of Bongnyeongsa」 which located at the end of a sentence. Those history resources utilized as a basic material for taking a general view of Bongnyeongsa's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Modern and contemporary period of Bongnyeongsa's history can be divided among ‘before Myoŏm(1931-2011)’ and ‘after Myoŏm’. Bongnyeongsa maintained its temple influence constantly after a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However, the previous history of Myoŏm‘s staying at 1971, there were no Buddhist temple phase or tradition which was worth for special mention. The fact which stayed of Gwangdeok and Beopryong(high priest both) is confirmed in 1960's of course, but these staying wasn't have a special influence in forming Bongnyeongsa's Buddhist temple phase. Eventually, Bongnyeongsa's Buddhist temple phase was forming newly after the period of 1971. Representative Buddhist temple phase which found at Modern and contemporary period of Bongnyeongsa's history are as follows:First, Bongnyeongsa has Buddhist temple phase as central temple of Korean Buddhist nuns education. The second, Bongnyeongsa has Buddhist temple phase as a whole world Buddhist nun by establishing Buddhist nuns Yulwon for the first time in the world. The third, Bongnyeongsa is going to have Buddhist temple phase as a main temple by studying dish of a Korean temple and make them spread. For all Bongnyeongsa public, absence of the Myoŏm who has the special status so that she draws the clear line of the world Buddhist nun history, may possible to be feel sense of loss for a long time. But it's necessary to mark the fact that future Bongnyeongsa‘s Buddhist temple phase is made with the present moment. How to maintain well Bongnyeongsa‘s Buddhist temple phase here and now which forming by the Myoŏm. What kind of thing does Buddhist temple phase of Bongnyeongsa which has to form it and go newly have to be? Such problem put in front of the Bongnyeongsa's public will expect that a solution can be from now on perfectly.
한국어
이 논문은 근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봉녕사 역사를 개관하고, 이 시기 새롭게 형성된 봉녕 사의 사격과 그 의미를 나름대로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필자는 봉녕 사와 관계된 연대기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글의 끝에 지금까지 파악된 내용 을 연보 형식으로 정리하여 「봉녕사의 주요 연혁」을 덧붙여 놓았다. 이같은 연혁 자료는 봉녕사 근 현대 역사를 개관하는 데 있어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근현대 봉녕사의 역사는 ‘묘엄(1931∼2011) 이전’과 ‘묘엄 이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봉녕사는 일제강점기 이후 꾸준하게 그 사세를 유지하여 왔지만, 1971년 묘엄 스님이 주석하기 이전의 역 사에서 특기할 만한 사격이나 전통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1960년대 광덕, 법룡 등의 고승 주석 사실이 확인되지만, 이들의 주석은 봉녕사 사격 형성에 특별한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결국 봉녕 사의 사격은 1971년 이후의 역사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근현대 봉녕사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사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봉녕사는 한국 비구니 승가교육의 중심도량이라는 사격을 지니고 있다. 둘째, 봉녕사는 세계 최초로 비구니율원을 설립하므로써 전 세계적인 ‘비구니律刹’로서의 사격 을 지니게 되었다. 셋째, 봉녕사는 한국의 사찰음식을 연구하고 보급하는데 있어 本刹과도 같은 사격을 갖추어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 비구니역사의 한 획을 그을 정도로 특별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 묘엄 스님의 不在는 봉녕사 대중 전체에게 오랫동안 상실감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 봉녕사의 사격은 지금 이 순간의 모습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묘엄 스님에 의해 형성된 지금 이 시 점의 봉녕사 사격을 어떻게 잘 유지시켜갈 것인가, 새롭게 형성해 가야할 봉녕사의 사격은 어떠 한 것이 되어야 할까. 봉녕사 대중 앞에 놓여 있는 이같은 과제가 앞으로 원만하게 해결되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일제강점기의 봉녕사
Ⅲ. 1950∼1960년대의 봉녕사와 光德, 法龍
Ⅳ. 妙典, 妙嚴의 주석과 중창불사
Ⅴ. 맺음말 - 봉녕사의 사격 형성과 그 의미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