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Dongyi (東夷) in Pre-Qin refers to people who lived in today’s Shandong area and possessed non-Zhongyuan (the Central Plain) cultural tradition, or a group of those people. Scholars have conducted studies on the meaning of Dongyi, its origin and regional distribution, cultural line and features, and changes of ‘Dongyi’ concept so far. However because the previous scholarship focused on rather Zhongyuan dynasties’ conquest the East and their perception on Dongyi than Dongyi itself, Dongyi was considered to be undeveloped subcult who finally should be subjected to the Han Chinese tradition. Thus there has not been progress in studies on how Dongyi existed and on its development political and social. This paper recognizes that situation mentioned above and deals with Dongyi in Pre-Qin period in particular in the period when Western Zhou existed in the Central Plain (1046-771 B.C.E). The paper examines forms of Dongyi existence in intercultural relationship with the Western Zhou and thereby context in which Dongyi in the period developed using Bronze Ritual Vessel Inscriptions and archaeological materials. Even though the greater part of the written materials in particular Bronze Ritual Vessel Inscriptions was stated from side of the Zhou Dynasty, recent archaeological excavations have provided with a clue with which we can concretely understand the inscriptions on Bronze Ritual Vessels related to Dongyi. The inscriptions on Bronze Ritual Vessels related to Dongyi mostly state revolt, which took placed in early period of the Western Zhou Dynasty, and the suppression of the uprising. This was because Dongyi was actively involved in it. The subjugation of the Dongyi rebellion continued from King Cheng (成王) through King Kang (康王) and influential families such as Zhou-gong, Tai-gong and Bomaofu families within the Western Zhou Dynasty were involved in the suppression. When reign of King Mu (穆王) began, which the middle Western Zhou started, statements on Dongyi rapidly from the inscriptions on Bronze Ritual Vessels disappeared rapidly. This should be because the Western Zhou’s rule on Dongyi was stable in that period. The inscriptions on Bronze Ritual Vessels, however, stated on Dongyi again in between the middle and late of the Dynasty. Dongyi in the period was described as an object that formed multiple political organizations called Bang (邦) and that took place activities against the Dynasty, allying with Huaiyi. This is related to the Dongyi’s reaction caused by the fact that the Dynasty acquired basis of rule in Dongyi area. Thus Dongyi started to organized its political system in response to the massive alien power. As a result, the Bangs in Dongyi area exercised controlling on the basis of networking material resources over the fortified settlements. By doing it in the late Wetern Zhou period multiple political organizations were established in Dongyi area and their strength grew as much as it was systematically against the alien power. Fall of the Western Zhou Dynasty and establishment of various states in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were started with the historical context mentioned above.
한국어
先秦시대의 東夷는 대체로 현재의 山東 일원에 거주한 비중원계 문화 전통의 소유자 혹은 그들로 구성된 집단을 뜻한다. 지금까지 선진시대 ‘東夷’ 명칭의 의미, 기원과 분포지역, 문화적 계보와 특징, 그리고 ‘동이’ 개념의 변화 등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연구의 주요한 관심사는 東夷 자체보다 중원 지역 왕조 국가의 동방 정복 혹은 그들의 동이에 대한 인식 등의 문제에 집중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이는 중원의 주변부에 위치한 낙후한 異文化集團이며 결국은 중국적 문화 전통으로 수렴될 존재로 간주되고, 따라서 東夷의 존재 양태나 그들의 정치적, 사회적 발전에 대 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큰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이 글은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작성된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루는 대상은 선진시대의 동이, 그 가운데서도 특히 중원에 서주 왕조가 존속하던 시기(기원전 1046~기원전 771)의 東夷이다. 이 글 에서는 청동예기 명문과 고고학적 자료를 활용하여, 西周 왕조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관찰되는 東 夷의 존재 양태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이 시대의 동이 사회가 발전하여 간 맥락을 살펴보았다. 사 용되는 문자 자료(특히 청동예기 명문) 대부분이 周 왕조의 입장에서 서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고고학적 발굴 조사는 동이 관련 청동예기 명문의 내용을 구체적 이며 상대적인 바탕 위에서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동이에 관련된 청동예기 명문은 대부분 서주 왕조 성립 초기에 일어난 반란 및 그에 대한 토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반란에 동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서주 왕조의 동이 토벌 은 成王을 지나 康王 재위기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토벌에는 周公 일가는 물론 태공 일가와 伯懋父를 비롯한 서주 왕조 내의 유력 세력이 다수 참여하였다. 서주 중기가 시작되는 穆 王 경이 되면 동이에 관한 기록은 청동예기의 명문에서 급격히 사라진다. 이것은 서주 중기에 들 어 동이에 대한 서주 왕조의 지배가 안정된 것과 관련이 있다. 동이는 서주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점이 되면 청동예기 명문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한다. 이때의 동이는 복수의 ‘邦’을 형성하고 회이와 연합하여 서주 왕조에 대한 적대적인 행위를 일삼는 주인공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서주 왕조가 중기 이후, 동이 지역에서 통치 기반을 확보한 데 대한 동이의 반작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원 지역에서 침투한 거대한 외래세력에 대응하여 토착세력 또한 체제를 정비해 나가기 시작했 다. 그 결과 동이 지역에서 형성된 복수의 ‘방’은 성곽으로 방어되는 취락을 중심으로 일정한 영역 에 걸쳐 물적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서주 후기가 되 면 동이 가운데 복수의 정치체가 형성되고 이들의 힘이 외래세력에 조직적으로 대항할 만큼 성장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주 왕조의 몰락과 春秋 列國의 성립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목차
II. 동이의 분포 범위
III. 金文에 보이는 周와 東夷의 관계
1. 西周 전기의 양상
2. 西周 후기의 동향
IV. 출토자료에 보이는 東夷 사회의 발전
1. 西周 전기의 중원계 유적-劉臺子와 莊里西
2. 西周 중기의 중원계 유적-魯國故城과 陳莊
3. 西周 중기의 토착계 유적-歸城유적군
V.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