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historical title of Dokdo, which was established due to submission to Silla of the Usanguk (present-day Ulleungdo and Dokdo), or the State of Usan, in the 13th year of King Jijeung of Silla, could be replaced with the current title under the international law by "the Korean Empire edict No.41" in October 25, 1908. Unfortunately however, all Korean territory became in fact merged into Japan 10 year safter, in August 22, 1910 due to the annexation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This led to the suspension of Dokdo dominium of the Korean Empire. However, the suspension of title was recovered retroactive to the year 1910 due to the collapse of Japan in 1945. This referred title underlies the title of Dokdo dominium of today's Republic of Korea. The title of Dokdo dominium that was actually suspended due to "the annexation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was recovered due to a series of actions taken by the allied countries, and in 1951, this was settled, approved, and confirmed based on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Therefore, after 1951, the ground of claim for Dokdo dominium is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and not the previous "submission document", nor "the Cairo declaration" nor "the Potsdam declaration" nor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 Order No.677". These can only be quoted as the basis for the interpretation of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and it is difficult to consider it as the ground of claim for the Dokdo dominium. It is considered that the imperium of Dokdo was recovered based on the Order and the dominium of Dokdo based on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It is approved that Dokdo was separated in accordance of "SCAPIN Article No.677" based on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Article 19(d), therefore, Dokdo is directly separated from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and intermittently goes upon the "SCAPIN Article No.677". Moreover,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Article 2(a) "approves the independence of Korea" and the approval was retroactive to August 15, 1948.
한국어
신라 지증왕 13년(512) 우산국의 신라에의 귀복으로 수립된 독도의 역사적 권 원은 대한제국에 이르러 1908년 10월 25일의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의해 현재 국제법상의 권원으로 권원의 대체(replacement of title)가 이루어질 수 있 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로부터 10년이 되는 1910년 8월 22일의 "한일합방조약"의 체결로 독도를 포함한 한국의 모든 영토는 일본에 사실상 병합되어 현대국제 법상 권원으로 대체된 대한제국의 독도영유권의 사실상 중단되게 되었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사실상 중단되었던 권원은 1910년에 소급하여 회복하게 되었다. 이 회부된 권원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독도영유권의 권원을 이루고 있다. "한일합방조약"에 의해 사실상 중단되었던 독도영유권의 권원은 연합국의 일련 의 조치에 의해 회복되게 되었고, 1951년 "대일평화조약"에 의해 이는 결정ㆍ승인ㆍ확인되게 되었다. 따라서 1951년 이후 오늘의 시점에서 독도영유권의 권원은 "대일평화조약"이며 그 이전의 "항복문서", "카이로선언", "포츠담 선언", "연합국 최고사령관 훈령 제677호"가 아니다. 이들은 "대일평화조약"의 해석의 근거로 원용될 수 있을 뿐 그 자체가 독도영유권의 권원으로 보기 어렵다. 독도의 imperium은 동훈령에 의해, dominium은 "대일평화조약"에 의해 회복되 게 된 것으로 본다. 오늘의 독도 영유권의 권원은 "대일평화조약"이다. "대일평화조약" 제19조 (d)항의 규정에 따라 "SCAPIN 제677호"에 의해 분리된 것이 승인되므로 독도는 직접적으로 "대일평화조약"에 의해 분리된 것이며 간헐적 으로 "SCAPIN 제677호"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대일평화조약" 제2조 (a)항의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의 규정에 의해 1948년 8월 15일까지 승인의 효력이 소급되는 것이다.
목차
Ⅰ. 서론
Ⅱ. 중단권원의 회복과정
1. 한국의 자주독립선언과 대한민국임시헌법
2. 연합국의 조치
Ⅲ. 중단권원의 회복시기
Ⅳ. 중단권원의 회복내용 : 대일연합조약 제2조의 해석
Ⅴ. 결론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