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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의 간행방식과 망실

원문정보

A Study on Missing and Publication System of Gyo-jang

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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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Eui-cheon play a leading part in engraving and printing of Gyo-jang. The early researchers understood Gyo-jang are woodblocks were engraved from Gyo-jangdo- gam in Hung-wang-sa. The result of successive study and research, We can gain comprehension of Gyo-jang woodblocks were engraved from Gwang-gyo-won in Gum-san-sa and imported from Sòng dynasty. Furthermore the 82th volume of Beob-won-ju-rim was shown to the public recently. Accordingly, we have a new understanding about engraving and printing of Gyo-jang. I can now tell ascertain the facts about Gyo-jang consist of four sections; woodblocks were engraved from Gyo-jang-do-gam in Hung-wang-sa after 1090, woodblocks were engraved from Gwang-gyo-won in Gum-san-sa after 1083, woodblocks imported from Sòng dynasty in 1087, woodblocks added to the First Edition of Tripitaka Koreana. And All Gyo-jang woodblocks were not stored at one place. Therefore We should know that woodblocks were not destroyed in together with the First Edition of Tripitaka Koreana in Mongolian attacks.

한국어

의천이 간행을 주도한 교장에 대한 초기의 연구는 교장의 범위를 흥왕사 교장도감본에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이후 계속적인 연구를 통해 금산사 광교원 등 국내 사찰의 개판본과 해외 수입본 등도 교장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더욱이 근자에 공개 된 「법원주림」 권82는 교장의 간행사업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기회를 주었다. 이제 교장은 1090년 이후의 흥왕사 교장도감 간행본, 1083년경 이후의 금산사 광교원 등의 국내사찰 간행본, 1087년에 송나라로부터의 수입본, 초조대장경이 일단락된 이후 간행된 초조대장 경 추가본 등 4부류의 방식으로 간행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교장 목판은 한 곳에 봉안되다가 일시에 망실된 것은 아니므로 몽고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과 함께 모두 소진되었을 것으로 보는 추정은 적합한 판단이 아니다.

목차

초록
 ABSTRACT
 1. 서언
 2. 「교장총록」과 교장
  2.1 완성과 가치
  2.2 교장과 章疏
 3. 교장의 간행방식
  3.1 흥왕사 교장도감
  3.2 금산사 등 국내사찰
  3.3 해외 수입
  3.4 초조대장경 추가
 4. 봉안과 망실
 5. 결언
 참고문헌

저자정보

  • 오용섭 Oh, Yong-Seob. 인천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문헌정보학과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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